[박근혜 가족의 무서운 이야기]
[주진우 시사IN ]
[박근혜 5촌 박용철·박용수 피살사건 정리]
[주진우 시사IN ]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 3대 의혹
2011년 박근혜 남매의 5촌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에 따르면 박용수씨가 사촌동생 박용철씨를 흉기로 살해하고 자살했다. <시사IN>은 국과수 기록을 입수하여 단순 살인으로 보기 힘든 정황들을 발견했다.
2011년 9월6일 새벽 5시40분.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 수유분소 앞에 한 사내가 쓰러져 있었다. 신고를 받고 112와 119가 출동했지만 사내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
얼굴과 배에서 피가 흘렀고, 창자가 도로에 쏟아져 있었다. 양쪽 눈썹, 콧구멍 주위, 입술 등 얼굴과 가슴, 배에 ‘ㄱ’자와 ‘V’자로 찢긴 상처가 있었다. 칼이 깊숙이 들어가 많은 장기가 손상돼 있었다. 시체 옆에는 망치가 떨어져 있었다. 사내는 망치로 머리를 세 차례 가격 당해 두개골이 함몰돼 있었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사내는 박용철씨(당시 49세)였다.
사건 현장에서 3㎞ 정도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옆. 나뭇가지에 또 다른 사내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사내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숨진 박용철씨의 차 열쇠와 유서 등이 나왔다. 바지와 끼고 있던 장갑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박용철씨의 혈흔이었다. 시체 옆에 놓인 가방에는 약병, 회칼, 손전등, 우편물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사내의 이름은 박용수(당시 51세).
경찰은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죽인 후 자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수사에 들어갔다.
지난해 9월6일 새벽, 서울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 근처에서 박용철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
살해된 박용철씨와 용의자 박용수씨는 사촌 간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인 박무희씨의 두 아들 박재석씨와 박재호씨의 아들이었다(아래 가계도 참조). 박용수·박용철씨는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와는 5촌 간이다.
하지만 사건 당시 박근혜 후보 측은 박용철·박용수씨에 대해 잘 모른다고 했다. 지난해 9월8일 KBS 보도에 따르면, 박 후보의 한 측근은 “박근혜 전 대표는 (숨진 두 사람이) 가족이다, 친척이다라는 건 알겠지만 왕래가 없었기 때문에 어떤 분인지, 무슨 일을 하시는지, 어떻게 생활하시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왕래가 없으시니까”라고 말했다.
살해된 박용철씨는 박 후보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인물이었다. 박 후보의 동생인 박근령·박지만 남매와 관계된 사건에 꾸준히 이름이 오르내린 ‘박씨 가문 송사의 핵심’이기도 했다.
2007년 11월에는 ‘육영재단 폭력사건’을 주도했다가 형사처분을 받기도 했다. 당시 박용철씨는 한센인 100여 명과 폭력배를 동원해 육영재단에 쳐들어가 이사장이던 박근령씨를 강제로 쫓아냈다. 이후 육영재단은 박지만의 지인들이 차지하게 된다. 박용철씨는 2008년 5월부터 9개월 동안 육영재단 내 어린이회관 관장을 지냈다.
2007년 7월에는 박용철씨가 박근령 전 이사장의 남편 신동욱씨와 함께 중국 칭다오로 출장을 갔다. 여기서 박씨는 ‘청부살인 사건’ 논란에 휩싸였다. 신씨는 박용철씨의 권유로 함께 중국에 갔다가 청부살인을 당할 뻔했다고 주장했다. 칭다오에 도착한 첫날 밤, 신씨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속옷만 입은 채 숙소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었다. 박용철씨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 경찰서에 자진 출두해 마약을 했다고 신고했다. 그는 “중국 칭다오의 한 술집에서 (둘이 함께) 마약을 흡입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 신씨가 마약에 취해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신씨가 한국에서 받은 마약 조사에서는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육영재단 폭력사건’과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으로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신동욱씨는 두 사건 모두 박용철씨가 관계되어 있고, 배후에는 박지만 회장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내용을 박근혜 후보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익명으로 40차례 올렸다. 신씨의 청부살인 의혹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갔다. 신씨는 박지만 회장을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박지만 회장은 무고 혐의로 신씨를 맞고소했다. 또 신씨는 박근혜 후보에게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 박 후보 미니홈피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에서다.
신씨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여겨지던 이 사건의 이야기가 갑자기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박용철씨가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다. 2010년 7월 박씨는 이 아무개 전 육영재단 법인실 부장에게 사건의 실체라며 이렇게 털어놓았다. 이 전 부장이 2010년 9월1일 법정에 나와 증언한 내용이다. “박용철씨가 ‘신 교수를 죽이라고 박지만 회장이 이야기한 내용을 녹음한 것이 있고, 통장으로 비용을 부쳐준 증빙이 있다. 나 혼자 그냥 죽을 수 없다(2010.7.28)’라고 말했다.” 그즈음 박용철씨는 박지만 회장에 대해 서운함을 자주 표시했다고 한다. 박 회장 일을 돕다 각종 송사에 휘말렸는데도 인지대 한번 내준 적이 없다는 식의 불만과 무엇보다 자신이 맡았던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 후임으로 박 회장 비서실장인 정용희씨가 온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이런 박용철씨의 심경은 검찰 진술 조서 등에도 나온다. “박근령 고모의 사무국장 신분도 인정하지 않고 월급도 한 푼 안 주고 방치하는 것을 보고 정용희와 박지만 아제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굉장히 컸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육영재단 폭력사태와 관련해 저는 정용희에게 속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2009년 12월29일 검찰 참고인 진술 조서).”
박용철씨가 이런 속내를 털어놓았다는 얘기가 신동욱씨 귀에 들어갔다. 신씨는 자기 재판의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불렀다. 2010년 9월1일 박씨는 법정에 섰다. 박씨는 이렇게 진술했다. “(박지만 회장의) 정용희 비서실장이 나에게 ‘박지만 회장님 뜻이다’라고 이야기한 것을 증인이 녹음한 테이프가 있다. …테이프라고 할 것도 없고 증인이 핸드폰에 녹음해놓은 것이 핸드폰을 바꾸면서 캐나다에 가져다놓았다.” 정 비서실장은 법정에서 박씨의 이야기가 다 소설이라고 맞섰다.
지난해 9월 박용철씨는 증인으로 다시 법정에 나오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9월6일 피살되면서 법정에 다시는 설 수 없게 됐다. 사건 당시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남편 신동욱씨 측은 박용철씨가 죽은 시점이 묘하다고 지적했다. 박용철씨가 죽을 당시, 신동욱씨 변호를 맡았던 조성래 변호사는 “오는 9월27일 박용철씨를 증인으로 신청해놨는데, 그 전에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누가 반사이익을 볼지 생각해봐라. 석연찮은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서울구치소에 구속 중인 신동욱씨도 지난해 10월28일 기자와의 면회에서 “나에게 증언을 하기로 하고 (박용철씨가) 바로 죽었다. 그는 스스로 자기가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는데, 진짜 그런 일이 발생했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1, 2, 3심에서 징역 1년6월이 확정됐다. 다만, 육영재단 폭력 사태에 박지만 회장이 관련되었다는 신씨의 주장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이 내려졌다. 판결문에 “박지만 EG 회장이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을 지시했다는 부분은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허위라는 점에 대해서도 검찰이 입증을 다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이 들어 있다. 신씨는 대선이 끝난 내년 2월 풀려나게 된다.
박용철·박용수,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다.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채무 관계도 없었다. 사건 전날인 9월5일 밤에도 둘은 함께 술을 마셨다. 서울 강남 신사동에서 시작한 술자리는 왕십리 술집으로 이어졌다. 그 자리에는 두 사람을 아는 황 아무개씨(37)가 함께했다. 술자리에서 다툼은 없었다. 특별히 이상한 낌새도 없었다고 한다.
만취한 박용철씨가 술자리를 끝내고 귀가하려 하자 술집 종업원이 대리운전 기사를 불렀다. 대리운전 기사가 도착하자 박용철·박용수씨는 함께 차를 타고 떠났다. 자정을 넘긴 시각에 출발한 대리기사는 박용철씨 집이 있는 일산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술에 취한 박용철씨는 차에 타자마자 잠들었다. 갑자기 박용수씨가 자기 집이 있는 수유리 쪽으로 방향을 틀자고 했다. 9월6일 새벽 1시께, 차량이 수유동 4·19 사거리에 도착하자 박용수씨는 거의 왔다며 대리기사를 돌려보냈다. 박용수씨는 사건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동이 틀 무렵 시체로 발견됐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된 흉기와 박용수씨 옷과 손에 묻어 있는 피가 박용철씨 DNA와 일치한다는 점을 들어 ‘사촌 간의 살인사건 그리고 자살’로 결론 내렸다.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흉기로 수차례 찔러 죽인 뒤 스스로 목을 맸다는 내용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10월7일 서울 강북경찰서는 이 사건을 ‘불기소(공소권 없음) 의견’으로 서울북부지검에 송치했다. 닷새 후 사건은 ‘피의자 변사’로 내사 종결된다.
키 176㎝, 몸무게 105㎏의 거구에 폭력 전과가 6개나 있는 박용철씨를 키 167㎝에 몸무게 73㎏인 박용수씨가 잔인하게 살해했다. 망치로 머리를 세 차례나 가격해 두개골을 함몰시켰다는 박용수씨는 폭력과 관련된 전과가 하나도 없다. 용수씨의 한 지인은 “온화한 성격이어서 누구를 때리거나 그럴 사람이 아니다. 살인사건 소식을 들었을 때 당연히 박용철이 박용수를 죽인 줄로만 알았다”라고 말했다. 강북경찰서 한 담당 경찰은 “전과도 경험도 없는 사람이 지인을 수십 차례 칼로 찌르고 망치로 머리를 깬다는 것은 현장에서 접해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죽인 사람 또한 죽은 상태라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시사IN>이 단독으로 입수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부검 감정서와 사건 기록을 살펴보면, 단순 피살과 자살 사건으로 보기 힘든 정황이 여럿 발견된다. 경찰의 사건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도 있다.
그들 몸에 남겨진 흔적
두 사람은 사건 당일 저녁 함께 술을 마셨다. 1차에 이어 2차까지 이어진 술자리에서 박용철씨는 만취 상태였지만 박용수씨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다. 피살된 박용철씨의 혈중 알코올 농도는 0.196%, 자살한 박용수씨는 0.01% 미만이다. 그런데 이들의 체내에서 졸피뎀·디아제팜과 같은 수면제 성분도 검출되었다. 박용철씨는 졸피뎀 0.52㎎/L, 디아제팜 0.25㎎/L로 다량 검출됐다. 박용수씨는 졸피뎀 0.01㎎g/L, 디아제팜은 정량 한계 이하였다. 두 성분은 모두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향정신성의약품이다. 경찰 수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모두 졸피뎀과 디아제팜을 처방받은 사실이 없다. 누군가 술이나 음식에 약을 탄 것이다.
박용수씨 바지 뒷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와 박씨의 입주등록 신청서. 국과수는 대조할 문자가 적어 두 글씨체를 비교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
자살한 박용수씨 위에서는 녹지 않은 알약 1정이 발견됐다. 부검 감정서에는 알약 성분에 대한 분석은 없다. 다만 박용수씨의 자살 현장에서 발견된 가방에서 정장제(설사약) 약병이 발견된 바 있다. 한 약사는 “건강한 남성의 경우, 대부분의 정장제 알약은 30분 이내 녹는다. 정장제가 아닌 보통 알약은 10분 이내 녹고, 혈압약·심장약·수면제는 투입 즉시 녹는다”라고 말했다. 잔인하게 사촌을 난자하고 자살을 앞둔 사람이 소화를 위해 설사약을 먹은 셈이다. 한 베테랑 강력반 형사는 “목을 매 숨진 사람은 대부분 사정을 하고 용변을 본다. 누군가 자살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 설사약을 먹였다는 추리는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용철씨를 죽인 북한산 수유분소 탐방안내센터 앞 주차장에서 박용수씨가 자살한 용암문까지는 3㎞가량 떨어졌다. 걸어서는 1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이다. 적어도 죽기 30분 전에 박씨가 약을 먹었다면 걸어가면서거나, 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중이어야 한다. 만약 차를 탔다면, 택시나 제3자의 도움이 있어야 용암문까지 짧은 시간 내 도착할 수 있다. 박씨가 북한산 입구까지 타고 온 박용철씨 차는 사건 현장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족적을 떠서 자살 현장 근처의 박용수씨 외 다른 발자국은 없었는지를 확인해야 했지만 경찰 조사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 자살한 박용수씨의 목과 팔·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목을 맨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상처였다.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인 흔적으로 보인다. 이 상처가 박용철씨를 죽이는 과정에서 생긴 것인지, 죽기 전에 누군가에 의해 끌려간 것인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박용철씨는 만취 상태에서 약물에까지 취해 있었다. 저항이 어려운 상태였다.
유서 속 글씨는?
경찰은 자살한 박용수씨 뒷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발견했다. ‘유서’라고 적혀 있었다. ‘유서,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세요.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 매형(○○○) ×××-××××-××××.’ 경찰은 유서가 쓰인 종이를 자살의 근거로 들었다.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박용수씨가 자신이 묵던 여관방에서 발견된 노트에 유서를 적고 찢은 흔적이 있다. 같은 노트에 대고 쓰면 눌러서 뒤에 남는 게 있는데 그 노트가 여관에 있었다”라고 밝혔다. 당시 필적 조회를 해봤냐는 기자의 물음에는 “현재 남아 있는 필적이 거의 없어서 감정 불가인데, 어차피 그 여관방에서 노트가 발견되었고 여관 주인 말에 의하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가 와서 쓴 거라고 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IN>이 입수한 국과수 문서영상과의 감정서를 보면, ‘매형(○○○) ×××-××××-××××’ 부분에는 필압이 확인되지 않았다.
<시사IN>은 박용수씨가 쓴 한 오피스텔 입주등록 신청서에 대한 국과수의 필적 감정서도 입수했다. 이 또한 “서로 비교 대조할 수 있는 동일 내용의 문자도 구성이 단순한 아라비아 숫자를 제외하고는 전혀 없으므로 이들 필적에 대한 특이한 부분과 공통된 부분의 특징을 구분할 수 없다”라는 결과를 받았다. 박씨의 유서는 여전히 박씨가 직접 쓴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는 상태다. 유서와 유서 노트에 대한 별도의 지문 감식은 이뤄지지 않았다. 강북경찰서의 한 담당 경찰은 “유서에는 일반적으로 미안하다거나 원망하는 내용을 쓴다.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라고 쓴 것은 이 사건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박용철씨 혈흔이 묻어 있지만 박용수씨 지문이 없는 칼(왼쪽 위), 박용수씨 위에서 발견된 알약(오른쪽), 박용수씨 가방에서 발견되었지만 박용수씨 지문이 없는 칼(왼쪽 아래). |
사라진 증거, 의문의 증거
경찰이 박용철씨 피살을 ‘박용수씨의 원한에 의한 계획범죄’라고 결론 내리면서 든 근거 중 하나가 두 달 전 미리 사놓은 흉기였다.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기자와 만나 “(박용수씨가) 범행 두 달 전에 시장에 가서 칼을 사고, 자기 숙소에서 테이프를 감고 준비를 했다.
칼에 감긴 것과 동일한 테이프가 여관방에 남아 있었다. 오래전부터 원한이 있었고 실행을 두 달 후에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박용수씨 가방에서 회칼이 나왔다. 정작 그 칼에서는 박용수씨의 지문이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
사용되지 않은 채 가방에 그대로 있었다. 또 숨진 박용철씨의 혈흔이 나온 다른 한 칼은 범행 장소에서 60m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됐지만 역시 박용수씨 지문은 없었다.
반면 사건 현장에서 수거된 한 담배꽁초에서는 “박용철·박용수가 아닌 다른 남성 DNA형이 검출된다”라고 국과수가 보고했다. 제3자가 사건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박용철씨의 휴대전화기도 사라졌다. 박씨는 일반 휴대전화와 태블릿 PC를 썼다. 일반 휴대전화의 행방이 묘연하다. 사라진 박씨의 휴대전화에 관심이 모이는 까닭은 박씨의 발언 때문이다. 박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주진우 시사IN ]
http://www.sisainlive.com/
[박지만씨로부터 형사 고소]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 총수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2013.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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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통한 1심판결에서 선거법 위반 등 혐의 없음…검찰은 각각 3년,2년 구형 |
검찰은 22일과 23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에서 “언론의 자유도 사실을 전제로 할 때만 정당화할 수 있다”며 주진우 기자에게 징역3년, 김어준 총수에게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환수 부장판사)는 배심원단의 평결에 따라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는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연합뉴스 | ||
주진우 기자는 이날 최후진술에서 “그 동안 수많은 사건을 취재했지만 이 사건은 정말 무서웠다. 고인이 된 박용철씨의 처가 오히려 그러다 죽는다며 저를 걱정했다”고 말했다.(관련기사=<주진우 기자 “취재 당시 살해 협박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무서운 기사, 무서운 취재는 안 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할 것”이라 밝혔다.
김어준 총수는 최후진술에서 “아무리 힘 센 사람을 상대해도, 계속 기사 쓸 수 있는 기자가 대한민국에 한 사람 쯤은 필요한 것 아닌가”라며 주 기자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으며, 판결 이후 “이상한 사건을 이상하다고 말할 근본 자유가 일반 국민들의 상식의 눈높이에서 지켜진, 의미있는 판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재판에는 주진우 기자와 친분이 있는 류승완 영화감독과 진선미 민주당 의원 등도 방청에 나섰다. 주 기자와 김 총수를 응원하는 시민들은 150여 곳의 방청석을 이틀 간 가득 매웠다. 이번 1심 재판은 피고인측의 요청에 따라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으며, 22일과 23일 종일에 걸쳐 변론이 오고갔다.
# [2014, 8]
김 총수는 15일 방송된 <김어준의 파파이스> 2부에서 “지난 주 결방 이유를 말씀 드리려면 거슬러 올라가는 사건이 있다”며 이 사건을 언급했다. ‘박근혜 5촌 사건’은 2011년 박근혜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사촌지간인 박용철 씨를 살해한 후 자살한 사건이다.
주진우 <시사인> 기자와 김 총수는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가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기소됐다.
▲ ⓒ 한겨레TV<김어준의 파파이스> |
김 총수는 이 사건과 관련해 두바이에 있는 관련자로부터 제보메일을 받았다고 조심스레 설명했다.
김 총수는 “관련자라고 하는 분의 존재도 처음 알았거니와 그 분이 간략하게 주장한 내용도 규모가 너무 거대해서 이건 주 기자와 둘이 가서는 돌아오지 못하지 않을까 (싶었다)”며 “그래서 팀을 꾸려 함께 다녀왔다”고 밝혔다.
그와 함께 팀을 꾸려 떠난 사람은 주진우 기자와 민변 한택근 변호사, 김용민 변호사, 공중파 방송의 PD, <한겨레> 탐사보도팀 기자, 국회의원 2명, 벙커1 PD라고 밝혔다.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공개한 두바이 호텔 인터뷰 사진 ⓒ '김어준' |
김 총수는 “(두바이에 도착한 후) 우리가 잡은 호텔방에서 전원이 원래계획과는 다르게 3박4일 동안 한 번도 안 나왔다”며 “밤새 (제보자와) 묻고 답하고 취재하고 기록하기를 반복”했다며 제보가 중대한 사안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사자가 한 이야기는 너무 충격적이라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며 “어디까지 보도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참여했던 모두는 검증을 위해 지금도 열심히 취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총수와 두바이에 동행했던 팀은 제보자의 증언 검증을 위해 취재 중이며, 이후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통해 보도될 예정이다.
고발뉴스
김어준 파파이스 21회 두바이 살해극 특종, 재판서 또 ‘무죄’ 유력
▲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
박근혜 대통령 5촌 간 살인사건'의 배후설을 주장하여 박지만 씨에게 고소를 당해 (1심에서 무죄를 받았고 연기된) 2심 선고를 앞두고는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김어준 파파이스 22회에서‘두바이 특종 전모를 밝힐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현재 김어준 총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씨로부터 고소를 당한 ‘박근혜 5촌 조카 살인 사건’은 지난 2011년 9월 북한산 등산로에서 박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이 지점으로부터 3㎞ 떨어진 북한산 탐방안내센터 인근 주차장에서 또 다른 5촌 조카인 박용철 씨가 흉기에 찔려 무참히 살해됐다.
당시 시사IN 주진우 기자가 취재한 보도에 따르면, 피해자 박용철 씨는 얼굴과 배에서 피가 흘렀고, 창자가 도로에 쏟아져 나와 있었고 양쪽 눈썹, 콧구멍 주위, 입술 등 얼굴과 가슴, 배에 ‘ㄱ’자와 ‘V’자로 찢긴 상처가 있었으며 칼이 깊숙이 들어가 많은 장기가 손상돼 있었다. 게다가 망치로 가격당한 듯 두개골이 함몰돼 있는 등 잔인했다.
이 사건에 대해 경찰은 박용수씨가 4촌인 박용철씨를 죽이고 자살했다고 결론을 내렸지만 주진우 기자는 이러한 "죽음에 대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주진우 기자가 쓴 시사IN의 기사 내용에 따르면, (박용철씨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박용수씨의 위에서 녹지 않은 정장제(설사약) 알약이 발견됐다. 자살을 하기 직전에 설사약을 먹었다는 얘기로, 의심할 근거가 됐다.
또한 그의 목과 팔, 무릎 곳곳에서 긁힌 상처가 나 있었다. 게다가 본인 필적이 확실하게 확인되지 않은 유서에는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세요. 절대 땅에 묻지 마세요'라는 내용이 있는 등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 의혹을 제기했다.
▲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좌측부터) |
이를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는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5촌 조카 피살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보도하고 출판기념회에서 박 전 대통령이 숨긴 재산이 10조원이 넘는다고 밝힌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이 사건에 대한 2심 재판선고가 지난 7월에 될 예정이었으나 어떤 연유인지 선고 재판이 연기돼 9월4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월초 박대통령 친척을 둘러 싼 살인사건에 대해 두바이에서 유력한 제보가 들어왔고 김어준 총수는 방송을 한번 결방하는 등 이 사건을 매우 중대안 사안이라 판단하고, 팀을 꾸려 두바이를 방문해 증언과 증거를 수집, 최근 이에 대한 취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어준 총수의 두바이 행에는 총 9명이 출발해 이 증언자를 만났고 법률적인 검토마져 마쳤다는 것.
당시 같이 출발한 사람들은 주진우 기자와 민변 회장인 한택근 변호사와 민변 김용민 변호사, 공중파 방송의 PD, 한겨례신문 기자, 국회의원 2명, 벙커1 PD 등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수많은 언론인들이 동행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다고 주장한 이 사건의 제보에 국회의원이 동행한 것에 대해 김어준 총수는 “외교 분쟁을 염려한 것”이라고 밝혀 제보자의 주장이 상당히 파급력있는 주장임을 암시해 궁금증을 유발했고 이 내용이 김어준 파파이스 21회에 공개 될 것으로 보았으나 정확한 내용보다는 약간 스치고 지나간 것에 불과 했다.
그러나 다음 주 초로 정해진 2심 선고 재판 이후에 열리는 김어준 파파이스 22회에 이 내용이 자세히 밝히질 것으로 알려져 그동안 국민들이 모르는 살해극의 전모가 드러날 것으로 보여 파파이스 22회 방송이 주목된다.
코리아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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