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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약력* 가계도 & 대권도전 & 개헌론 승부수?

김무성(金武星)


 (1951년 9월 20일 ~ ) 


김무성
기본 정보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출생1951년 9월 20일 (63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경상남도 부산시 대안동
(現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
거주지대한민국 대한민국 부산광역시 영도구
학력한양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부모아버지 김용주, 어머니 온양 방씨
배우자최양옥
자녀딸 김현경, 아들 고윤
경력삼동산업 대표이사
제48대 내무부 차관
한나라당 사무총장·비상대책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
새누리당 대표
군복무육군이병 소집해제
국회의원 정보
새누리당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의원 선수5
의원 대수15·16·17·18·19
정당새누리당
지역구부산 영도구
웹사이트

김무성 블로



학력

비학위 수료

명예 박사 학위





[생애]


대한민국 정치인이다. 김영삼의 측근 인사로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으며, 후에 신한국당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13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며 5선 국회의원이 되었다. 1992년 김영삼의 추대대책위원회 총괄국장과 1993년 14대 대통령 인수위원회와 문민 정부 시절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을 역임했다. 2000년대에는 박근혜의 측근 정치인으로 활동했으며 2014년 7월 14일 새누리당의 대표에 선출되었다.



김무성은 1951년 9월 20일 부산 부민동에서 기업인 김용주와 그의 2번째 아내인 온양 방씨의 아들로 태어났다.1976년 동해제강 상무가 되었다가 동해제강 전무가 되고, 1982년 삼동산업 대표이사 사장이 됐다. 이후 정계에 입문하여 김영삼의 측근이 되었으며, 김영삼 민주화추진협의회에 참여하였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임되었다. 1985년에는 민족문제연구소의 이사로도 재직했다. 이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 문제를 연구한 고 임종국의 유지를 기리는 민족문제연구소와는 다른 곳이다. 후자는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후에 같은 이름으로 개명하였다. 1985년 통일민주당 창당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여 정계에 입문하였다.


1987년 통일민주당 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이 되었으나 후보단일화 실패로 인해 김영삼은 2위로 낙선하였다. 그 밖으로는 1987년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당 기획조정실 차장, 1989년 국회행정실장 등을 지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하자 김영삼 김덕룡 등을 따라 민주자유당으로 건너와 민자당 의사국장과 의원국장 등을 지냈다.


정치활동 초기

1992년에는 민주자유당 김영삼 대통령 후보 추대대책위원회의 총괄국장을 맡아 김영삼 경선후보의 주변을 맡기도 하였다. 1993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등을 지내고, 1994년 제48대 내무부 차관이 되었다.

1996년의 15대 총선에 신한국당으로 출마하여 당선, 1996년 5월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15대 국회 당시 그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행정자치위원회 위원, 건설교통위원회 위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였으며, 당내 직위로는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총무와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이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에 재선되고 한나라당 출범에 참여하였다. 2004년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위원장이 되었으며 그 해의 17대 국회의원에 재선되었다. 200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회장이 되었다가 후일 민추협동지회 회장으로도 추대되었다. 2005년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선출됐다.


정치 활동

2007년 제17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어 이명박 선대위에서 활동하였다. 2007년 11월 한나라당 최고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2008년 3월 제17대 국회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었다. 2008년 5월의 선거에서는 친박으로 분류되 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18대 의원에 당선, 그 해 7월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귀하였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5월까지 한나라당 원내대표였고, 그해 6월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국회의원 야구단 이구동성 단장을 맡아보았다. 2012년 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자 새누리당 소속 의원이 되었다. 2010년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 정보위원회 위원을 맡으면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중 의원외교협의회 회장 등을 겸임했다


. 19대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고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이 되었다가 2013년 4월의 보궐선거에 당선되어 19대 국회로 복귀하였다. 또한 2014년 7월 제 3차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되었다





[김무성 탐구]




[새누리호 선장, '인간 김무성' 뜯어보기]


보스형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뇌구조를 <더팩트>가 분석해봤다. 그는 강한 여당을 만들기 위한 야망이 크고 직설적인 화법, 트렌치코트, 술, AB형이 트레이드 마크다. /사진=더팩트 DB, 그래픽=고수정 기자



 새누리당 김무성(62, 5선, 부산 영도구) 대표는 '보스형' 정치인으로 평가된다. 큰 체격과 거침없는 언행, 무엇보다 '통큰 리더십'으로 주변에서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


강한 카리스마 때문에 부드러운 이미지가 다소 부족하다는 게 흠이라면 흠. 이를 의식한 듯, 당권에 도전하면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기자들과 스킨십을 늘리고, 당 안팎에서 소통 행보에 나섰다.


<더팩트>는 전문가 조언과 언론 보도 등을 바탕으로 김 대표의 '성격' '화법' '스타일' '측근 그룹' 등을 분석했다.



코흘리개 '골목대장' 예순 넘어도 '무대'



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보스형' 정치인으로 평가된다./더팩트DB




학창시절 별명만 봐도 그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골목대장을 도맡던 그는 또래 아이들로부터 '무대(무성 대장)'라 불렸다.


골목대장은 머리 희끗한 중년이 되서도 '무대'라 불린다. 김 대표는 '친이계 학살'로 평가됐던 2012년 4월 총선 당시 '불출마'를 선언, '무소속 출마 러시'로 위기를 맞은 당을 구했다.


'백의종군'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았고, 캠프내 기강을 잡았다. 선거 기간 동안 캠프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펴고 상황을 직접 보고 받으며 활기를 불어 넣었다. '무대'란 별명도 이때 굳혀졌다.

김 대표의 혈액형은 AB형이다. 심리학적으로 AB형은 냉정하고 침착하며 치밀한 분석력과 정확한 판단력을 지닌 합리주의자이지만 뒷심이 약한 것이 단점이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AB형이다.


국회 홈페이지에 기재된 그의 취미는 '영화 감상'이지만, 정작 본인은 지난 13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골프도 안 치고, 취미도 술 마시면서 얘기하는 거다"라고 밝혔다. 박근혜 캠프 선대위원장을 맡을 당시 "그 좋아하는 술도 70일간 한 방울도 안 마셨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 핵심 찌르는 '직설 화법'…감정 어휘 특징



김 대표는 직설적인 화법이 특징으로 기쁘다 억울하다 등 감정적인 어휘도 자주 사용한다.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 대표. /이새롬 기자


김 대표는 직설적인 화법이 특징으로 '기쁘다' '억울하다' 등 감정적인 어휘도 자주 사용한다. 


지난달 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당 대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김 대표


생각과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감정적인 어휘를 사용하기도 하고, 공격적인 어휘를 재치 있게 바꾸는 '센스'도 있다. 지난 14일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공천권과 관련해 "지금부터 '살생부'가 아닌 '상생부'를 만들도록 하겠다"며 대화를 긍정적으로 이끌어갔다.김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는 '직설 화법'이다. 


최근 한 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인사 참극'과 관련,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 "당을 청와대 아래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김 실장이 청와대로 가서 당을 지시하고 인사와 공천에 개입한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한 것은 그의 화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더팩트>가 17일 W스피치커뮤니케이션 우지은 대표에게 김 대표의 화법 분석을 의뢰한 결과에도 이 같은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우 대표는 김 대표의 화법을 '직설' '감정적' '언어유희'로 구분했다.



우 대표는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김 대표는 말을 천천히 이어가는 안정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청중에게 신뢰감을 주고 귀를 기울이게 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고 잘 알려져 있듯이 모든 대화와 질문에 솔직하게 말하고 부정적인 의견에도 긍정적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기쁘다' '걱정하지 않는다' 등의 감정적인 어휘와 함께 '여러분'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 소통하는 느낌을 준다"며 "어휘력이 풍부해 공격적인 어휘를 기회로 삼아 재치 있게 바꾼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정치를 걱정했다'라고 말하는 등 언어유희를 자유롭게 구사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사투리 발음과 강한 성량이 부드럽지 못하다는 단점도 있다고 우 대표는 분석했다. 그는 "톤의 높낮이와 강약을 적절히 조절해주면 '옆집 할아버지'같은 편한 이미지로 소통·화합 요인을 더해 국민의, 마음을 좀 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 소탈한 패션 고집…정장·트렌치코트 즐겨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옷 스타일의 특징은 소탈함이다. 그는 정장을 즐겨 입지만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는 또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다. 이미지컨설턴트 전문가는 트렌치코트가 김 대표의 강인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더팩트 DB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옷 스타일의 특징은 소탈함이다. 그는 정장을 즐겨 입지만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그는 또 트렌치코트를 즐겨 입는다. 이미지컨설턴트 전문가는 트렌치코트가 김 대표의 '강인한 이미지'를 돋보이게 한다고 설명했다./ 더팩트 DB



김 대표의 패션은 소탈하다. 평소 짙은 색 정장에 흰색과 파란색 셔츠를 입는 것을 고집한다. 동료 의원들이 편한 차림의 복장을 입고 나타나는 자리에서도 김 대표는 같은 옷차림이다. 정장을 즐겨 입지만 넥타이는 착용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고, 대신 소매를 자주 걷어 올린다.


패션과 이미지컨설턴트 전문가 사이에서 짙은 색 정장은 직업의 전문성을 높이고 믿음직한 모습을 부각하는 효과를 주는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다. 또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고 단추를 풀어 헤치며, 소매를 걷어 올리는 스타일은 '남성성'과 '강인함'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사단법인 이미지컨설턴트협회 정연아 회장은 17일 <더팩트>와 통화에서 "김 대표 패션의 특징은 '소탈함'과 '강인함'이라고 말했다. "정장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패션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꾸밈 없는 패션은 남성적이고 털털한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대변된다"고 분석했다.


정 대표는 김 대표가 짙은 색 트렌치코트를 자주 입는 것에도 주목했다. 지난해 11월 15일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사전 유출과 불법 열람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을 때도 그는 어김없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정 대표는 트렌치코트가 '남성성'을 부각하는 효과를 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체격이 왜소한 남성의 경우 남성성을 부각할 수 없지만, 김 대표는 풍채가 크기 때문에 트렌치코트를 입으면 듬직한 리더의 느낌이 난다"고 평가했다.


다만 정 대표는 여당의 수장이 된 김 대표가 '소탈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좋지만 카리스마있는 자신의 이미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패션을 변화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셔츠 깃을 빳빳하게 하고 흰색 바탕에 파란색 굵은 선이 들어간 셔츠를 입는다면 김 대표 특유의 강하고 우직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동시에 보다 젊은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 원내·외서 물심양면… 계파 초월 '측근 그룹'



김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등으로 구분되는 당내 계파를 아우른다. 한때 원조 친박계였다가 비주류로 자리매김했지만, 친이(친이명박)계와 야당 의원들과의 인연을 꾸준히 맺어왔다. 지난달 27일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원희룡 제주지사 등 동료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 대표. /문병희 기자


김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 등으로 구분되는 당내 계파를 아우른다. 

한때 원조 친박계였다가 비주류로 자리매김했지만, 친이(친이명박)계와 야당 의원들과의 인연을 꾸준히 맺어왔다.




김무성 대표의 측근 그룹은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를 아우른다. 한때 원조 친박계였다가 비주류로 자리매김했지만, 상도동계로 정치에 입문한 이후 민주계 출신 인사들, 친이명박계와도 연을 꾸준히 맺어왔다.


이번 전당대회를 적극 도왔던 재선 김성태(서울), 김학용(경기), 이진복(부산), 이군현(경남), 이한성(경북), 권성동(강원) 의원은 원내부대표 그룹으로 김 대표와 인연을 맺은 뒤 줄곧 지원군 역할을 해 왔다.

부산 출신 재선 박민식 의원은 지난해 4월 김 대표가 '남을'에서 '영도'로 지역구를 바꿔 국회에 재입성할 때 지원사격에 나섰다. 김 대표의 보좌관 출신으로 지역구를 물려받은 초선 서용교 의원과 이헌승 의원도 측근으로 꼽힌다.


비박계 인사로는 전대 캠프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권오을 전 국회 사무총장, 후보 비서실장으로 활동한 안형환 전 의원 등이 있다.


이혜훈 전 최고위원과도 각별한 관계로 알려졌다. 캠프 공보단장이었던 배용수 전 국회도서관장, 공동대변인이었던 허숭 전 경기도 대변인, 문혜정 전 김황식 캠프 대변인도 김 대표 당선을 도왔다.





30년 정치 인생 'his story']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30년 정치 인생이 주목받고 있다. 김 대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며 정치에 첫발을 들였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맡으며 정치적 몸집을 키웠다. 2007년과 2012년 박근혜 대통령의 두 번의 대선 가도를 돕기도 했다. /서울신문·김무성 블로그 제공, JTBC 방송 화면 캡처



코흘리개 시절 '골목대장' 노릇을 했던 한 남자가 지난 14일 집권 여당의 명실상부한 '대장'이 됐다. 새누리당 김무성(63) 대표의 이야기다. 시쳇말로 날고 기는 사람들만 모인다는 국회에서 '김무성 대장'의 약칭 '무대'라는 별명으로 이름을 떨쳤고, 정치 인생 30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건 '배'를 출항시켰다.


집권 여당 대표가 된 그는 평소 꿈꾸던 '대망론'에 가까이 가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여권 내 차기 대권 주자 '톱 3'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정치적 스승' 김영삼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 공천 학살 등 우여곡절이 많은 김 대표가 당 대표가 되기고, '잠룡'이 되기까지의 '30년 정치 인생'을 들여다본다.



◆ 부산 '골목대장'이 '금배지' 달기까지



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9월 20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 전남방직과 신한제분을 운영하며 당대 거부(巨富) 반열에 오른 아버지(김용주) 덕분에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어릴 때부터 건장한 체격을 가졌기에 골목대장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무대'라는 별명도 그때 붙었다.


김 대표는 한양대 경영학과를 졸업하자마자 26세(1976년)라는 나이에 동해제강 상무로, 32세(1982년)에는 삼동산업 대표이사를 지냈다. 인생의 첫걸음을 기업에서 시작하며 사회생활을 배웠다. 그는 이때 성공한 '젊은 리더'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1980년부터 정치에 뜻을 품기 시작했다. 서울 중동고 재학 시절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 시내 고교 대표들과 연합 시위를 이끈 경험이 있던 그는 자신의 야망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김 대표는 결국 1983년 사업체와 주식을 모두 정리하고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경남중 선배'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1년 뒤 김 전 대통령을 따라 민주화추진협의회 창립 회원으로 참여했고, 1987년에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6·10 항쟁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치적 스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낙선하자 절치부심하던 그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에서 여러 당직을 거쳤다.



1992년에는 15대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행정실장,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을 지낸 뒤 내무부 차관까지 올랐다. 김 대표가 첫 금배지를 단 때는 1996년 15대 총선이다. 신한국당 소속으로 부산 남구을에서 내리 3선에 성공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듯했다.




◆ 두 번의 시련과 '백의종군' 그리고 5선 고지



김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렸던 2008년 당시 친이(친이명박)계가 주도한 18대 총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학살로 희생당했다. 2008년 3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탈당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 대표. /서울신문 제공


김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렸던 2008년 당시 친이(친이명박)계가 주도한 18대 총선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공천에서 이른바 '친박 공천학살'로 희생당했다. 2008년 3월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탈당 기자회견 중 눈물을 흘리고 있는 김 대표.




2010년에는 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세종시 수정안에 공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멀어졌고, 이는 두 번째 시련의 계기가 됐다. 김 대표는 친이 세력의 지원을 받아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로 추대됐고, 친박계와도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결국 친박계가 주도한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공천 심사과정에서 탈락했다.그러나 2008년에 첫 시련이 찾아왔다.


 이른바 '친박(친박근혜) 공천학살'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선 경쟁자였던 당시 박근혜 후보의 캠프 좌장이었다는 이유로 친이계(친이명박계)가 주도한 공천에서 희생당했다. 당시 김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다른 당은 '감동공천'을 하는데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감정공천'을 하고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후 김 대표는 '친박 무소속연대'를 결성해 부산·경남권 후보들을 대거 당선시키며 여의도에 복귀했다.


'백의종군'을 선택한 김 대표는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본부장을 맡아 박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이후 2013년 4·24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에 출마해 5선의 고지에 이르렀다.




◆ '무대' 30년 만에 집권 여당 대표 되다




김 대표는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체육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대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더팩트 DB





유의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여의도에 재입성하기 전부터 차기 유력 당 대표 후보로 거론됐던 그는 10·30 화성갑 보궐선거로 돌아온 서청원 의원과 당권을 두고 경쟁을 벌여왔다. '통일경제교실' '근현대사 역사교실' 등 각종 공부 모임을 주도하며 세를 불렸고, 마침내 지난 14일 '새누리당 제3차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대장' 자리에 올랐다.


'무대'의 야망은 당 대표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김 대표는 새누리당의 새로운 지도자로 당선되며 여권 내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5~16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권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김 대표가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정몽준 전 의원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김 대표의 정치 인생 30년은 새로운 시기에 진입했다.




[화려한 가계도…'현정은' 외삼촌, '고윤' 아버지]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가계도./더팩트 DB·김무성 페이스북·스노우볼엔터테인먼트·YTN 방송 영상·채널A 방송 영상·JTBC 방송 영상 캡처


현대그룹 회장', '3선 의원', '아이리스2 배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62)의 화려한 가계도가 눈길을 끌고 있다. 정치인부터 경영인, 연예인까지 분야를 막론한 인물들이 그의 가족 또는 친인척이다. 부친과 장인 모두 정치인 출신이며, 누나의 남편과 조카는 현대家 일원이다. 자녀들은 교수와 배우로 성장했다.



◆ 정치인 집안끼리 만나 사돈 맺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왼쪽) 전 전남방직 회장과 김 대표의 부인 최양옥 씨의 부친 최치환 전 의원./ JTBC·채널A 방송 영상 캡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부친 김용주(왼쪽) 전 전남방직 회장과 김 대표의 부인 최양옥 씨의 부친 최치환 전 의원

./ JTBC·채널A 방송 영상 캡처




김 대표와 아내 최양옥(57) 씨 부부의 아버지는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게다가 제5대 총선에서 나란히 당선돼 금배지를 달았다.


김 대표의 부친인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은 해방 직후 대한해운공사 사장과 주일본공사관 공사를 지냈다. 이후 이승만 정부 시절 민주당 소속으로 제5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김 전 회장은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에서 지금의 원내대표자리까지 올랐다.


최양옥 씨의 부친은 최치환 전 의원이다. 최 전 의원은 이승만 전 대통령 비서관 출신으로 제5대를 시작으로 3선 의원 출신이다. 그는 또 민주공화당 원내 부총무까지 올랐다.



◆ 대기업 회장까지 배출한 가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누나 용문학원 김문희 이사장, 그의 남편 현대상선 현영원 전 회장, 김 대표의 외조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그의 남편 고(故) 정몽헌 회장(왼쪽부터). / 더팩트 DB·YTN 방송 영상·JTBC 방송 영상 캡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누나 용문학원 김문희 이사장, 그의 남편 현대상선 현영원 전 회장, 김 대표의 외조카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그의 남편 고(故) 정몽헌 회장(왼쪽부터). / 더팩트 DB·YTN 방송 영상·JTBC 방송 영상 캡처




김 대표의 가계도에는 대기업 회장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김 대표의 누나 김문희(86) 씨는 용문학원 이사장이고, 그의 남편은 현대상선 현영원(87) 전 회장이다. 김 대표의 형은 한국경영자총협회 김창성(82) 전 회장으로 부친의 가업을 이어받아 전남방직 명예회장을 지냈다. 김 대표와 김문희 씨, 김창성 씨의 나이 차가 20년 이상 나는 것을 두고 친형제, 남매가 아니라는 설도 떠돌고 있으나 공식 확인된 바는 없다.

김문희 씨의 딸이자 김 대표의 외조카는 현대그룹 회장인 현정은(63) 씨다. 현정은 씨는 고(故) 현대그룹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아들 정몽헌 씨와 결혼했다.




◆ 자녀는 모두 예술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딸 수원대 김현경(왼쪽) 교수와 김 대표의 아들 배우 고윤. /김무성 페이스북·스노우볼엔터테인먼트 제공



김 대표의 자녀들은 예술적 소질을 발휘하고 있다.

김 대표의 딸은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국내 한 대학교 디자인 학부 전임교수로 임용됐다. 김 교수가 워낙 젊은 나이에 교수로 임용되자 일각에서는 그 배후에 김 대표가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지만, 임용에 문제는 없었다.

김 대표의 아들은 김종민(26) 씨로 '고윤'이라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KBS가 방영한 '아이리스 2'로 데뷔해 올해 MBC 드라마 '호텔킹'에도 캐스팅돼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4.07.18

http://news.tf.co.kr/read/ptoday/1389029.htm






[개헌론 승부수?]





김무성 일문일답 "대선 가까워지면 개헌 논의 안 돼"


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론은 16일 방중 기자단과의 조찬 간담회에서 방중 성과를 설명하면서 느닷없이 터져 나왔다. 그는 개헌 관련 질문에 당초 “정기국회 이후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말했다가 발언이 길어지자 “본격 논의하겠다고 한 적 없다” “봇물 터질 가능성이 있다 정도가 맞다”고 말을 주워담으려 했다. 

하지만 이원집정부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 점으로 미뤄 어느 정도 작정하고 준비한 ‘작심발언’이 분명해 보였다.

김무성 대표, 방중 결과 기자회견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16일 중국 상하이 홍차우 영빈관에서 3박4일 일정의 방중 결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_일부에서 개헌론이 나오지만 박근혜 대통령 시각에서는 아직 이르다는 것 아니냐.

다음(2017년) 대선에 가까워지면 (개헌이) 안 된다.


_대권 선두주자들도 개헌에는 부정적이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 사회 분위기가 중립지대를 허용할 수준이 됐다. 이제 연정으로 가야 정치ㆍ사회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정치 선진국으로 미국을 제외하고 모두 연정이다.”



연정과 정ㆍ부통령제는 다른 문제 아닌가.

“내각제의 부침 때문에 나도 정ㆍ부통령제를 선호했지만 진영논리에 의한 양극대립이 심해지고 있어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다. 이원집정부제도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나.”



_이원집정부제에 대한 선호가 높나.

“4년 중임제가 2/3로 기억을 하는데, 그 이후에 오스트리아 방식의 이원집정부제를 많이 구상을 하고 있다.”


_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가 무엇인가.

“선출된 대통령은 외치, 총리는 내치를 담당하는 거다. 내각제는 계파정치다. 세계에서 가장 썩은 정치가 일본이다. 계보는 용돈으로 만드는 것이다. 내각제 가면 망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빠르게 맑아지고 있다. 내각제가 부패정치라는 고정관념이 기우라는 생각도 최근 많이 했다.”


_개헌에는 국민적 관심도 아직 낮다.

“관훈토론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유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짧고, 무능한 대통령에게 5년은 너무 길다. 총리는 유능하면 길게 가지만 바로 바꿀 수 있다. 안정적 정치를 하는 장점이 있다.”


_중국 주석을 만난 정치인이 모두 대권에 출마했다. 이번 방중도 출마행보인가.

“정대 대권행보가 아니다. 대권행보를 하는데 김문수 (보수혁신)위원장을 데리고 왔겠나. 나는 자격도 없고 사심도 없다. 나보다 나은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해야 한다.”


김 대표는 이밖에 선거구제도 개편에 대해 “중대선거구제나 석패율로 가느냐의 선택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 혁신위가 추진하는 오픈프라이머리 제도에 대해서는 “내가 구상하는 것은 완전한 정당민주화”라고 답변했다. 방중 성과에 대해서는 “중국 정부가 북핵불용의 확고한 입장을 다시 보여줘 마음 든든하게 생각한다”면서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부주석에게 야당과 교류를 제안한 사실도 공개했다.

한국일보








김무성 대표 “정기국회 중 개헌논의 안해”…끝나면 봇물?






중국에서의 ‘개헌 발언’으로 대통령을 향해 반기를 들었다는 평가까지 불러왔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귀국하자마자 일단 진화에 나섰습니다.

사과를 하고 개헌논의 자제 의사를 밝혔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생각을 철회하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 아셈 외교 중에 발언을 했다는 점을 사과했고 개헌논의 자제도 정기국회 기간으로 한정했습니다.

이 문제 취재한 피디 연결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권연주 피디.


노종면 앵커(이하 노): 김무성 대표가 오늘 당무에 복귀해서 사과 발언을 한 겁니까?

권연주 뉴스피디(이하 권): 네, 어제 저녁에 귀국한 김무성 대표는 오늘 오전 일정에 없던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새누리당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나온 김 대표의 사과 발언, 직접 들어보시겠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대통령께서 이탈리아 아셈 외교를 하고 계시는데 제가 예가 아닌 것 같아서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김 대표는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논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투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김무성 대표가 본인의 견해 자체를 철회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늘 김대표 발언 중 주목되는 부분은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우리 당에서 개헌논의가 없길 바란다”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는 정기국회 이후 개헌론을 다시 꺼낼 수 있다는 얘기로도 들립니다.

이미 여러 차례 개헌 의지를 밝혀온 김 대표가 오늘 사과로 후퇴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회의 직후 기자들에게도 그는 ‘개헌은 늦으면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평소 생각하는 바를 말한 건데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개헌이 소신’이라는 점을 재확인한 셈입니다.






 

 

 

노: 그렇군요. 고개를 숙인 듯하지만 ‘정기국회 후에 개헌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다, 연내 논의가 바람직하다’ 바로 이 핵심 발언은 뒤집은 게 아닌 것으로 이해됩니다.

만약 김무성 대표 스스로 할 말은 해놓고 사과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일종의 치고 빠지기를 한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어떻습니까?

곽: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과는 하긴 했지만 개헌 이슈를 촉발시켰다는 점에서 김무성 대표가 의도한 바를 이미 손에 쥐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김 대표는 “청와대측의 연락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락이 있었어도 김대표가 쉽게 시인하진 않겠지만 청와대가 즉흥적으로 대응할 사안은 아니었다고 보는 게 합당해 보입니다.

야당은 일단 ‘여당 대표가 청와대 지시로 입장을 번복했다’는 말로 공세를 취했습니다.

박지원 민주연합 비대위원은 “집권 여당 대표가 청와대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정치도, 집권여당도 불행하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석현 부의장도 “여당 대표의 확고한 신념을 하루 만에 번복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이야말로 분권형 개헌의 당위성을 확실하게‘보여주는 손’”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야당의 비판도 개헌논의에 불을 지피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노: 아무래도 개헌논의는 궤도에 오를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개헌 논의는 어떤 내용입니까?


곽: 큰 흐름으로 보면 어제 김무성 대표가 언급한 분권형 대통령제, 구체적으로는 이원집정부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원집정부제는 정부와 국회의 연정방식으로, 직선제로 뽑는 대통령은 외교와 국방을 맡고,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는 일반 행정을 담당하는 제도입니다.





 

 

 

현재 155명의 국회의원이 참여하고 있는 ‘개헌추진을 위한 의원모임’에서도 분권형 대통령제에 대한 공감대가 있습니다.




 

 

 

모임의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우윤근 민주연합 원내대표는 “분권형 권력 구도를 갖춘 오스트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가 전형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김 대표와 같은 방안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이 외에 5년 대통령 단임제를 4년 중임으로 바꾸자는 논의도 있습니다.




 

 

 

개헌 대상은 아니지만 권력구조를 바꾸기 위해선 선거구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한 선거구에서 한명만 뽑는 현행 소선거구제가 사표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점에는 여야 의원들이 공감하지만 변화 정도에 대해선 이해관계가 얽혀 조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TV뉴스 







[김무성 '개헌론' 파문… '대권주자 입지 선점' 승부수]


개헌 찬성파 중심 당 재편 포석


朴 대통령 발언 열흘 만에 '항명' 권력 헤게모니 다툼 예고편

MB 세종시 수정안 반대 '원칙의 朴' 이미지 만들기 벤치마킹 해석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를 찾아 방명록에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애국선열을 기리는 글귀를 남기고 있다. 상하이=뉴시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개헌 논의에 불을 지핀 것은 그의 대권 의지와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여권의 권력 지형을 개헌 찬반그룹으로 나눠 이에 반대하는 친박계를 솎아내는 동시에 당내 차기 구도를 본인 중심으로 확실하게 재편하겠다는 포석이라는 것이다. 대권을 향한 승부수를 던진 셈이지만 아직 임기가 3년 넘게 남은 박 대통령과의 헤게모니 쟁탈전이 최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개헌 찬성 그룹 중심으로 대권 가도 재편


김 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밝힌 개헌 주장은 비교적 구체성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꽉 막힌 세월호 정국과 맞물려 최근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떠나 개헌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연초에 이어 지난 6일 “개헌은 또 다른 경제 블랙홀을 유발할 것”이라고 부정적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당내에서도 서청원 최고위원을 필두로 홍문종 윤상현 이정현 의원 등 친박계 의원들이 일제히 반개헌론 엄호에 나서면서 개헌 불씨는 사실상 수그러드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김 대표가 사실상 개헌 가이드라인인 박 대통령 발언 열흘 만에 구체적인 개헌 구상을 밝힌 것은 사실상 ‘항명’이나 다름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집권 여당 대표가 주요 이슈를 두고 대통령 부재 중에 다른 주장을 하는 것을 뭐라고 해석할 수 있겠느냐”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청와대도 말을 아끼고 있지만 불편한 기색은 역력하다.


집권 여당 대표가 정권 2년 차에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개헌 이슈를 던진 것을 두고 이명박정부 당시 세종시 수정안 이슈로 각을 세웠던 박 대통령을 벤치마킹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당시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원칙과 신뢰의 대권주자로서 이미지를 굳혔고, 자칫 흐트러질 수 있는 당내 친박 그룹을 결속하는 효과까지 이끌어 냈다. 개헌이 공론화할 경우 세종시 수정안을 능가하는 메가톤급 이슈가 될 수 밖에 없고 김 대표가 상황을 잘만 관리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관측이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대규모 수행단을 이끌고 방중에 나선 것 자체를 2009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견주어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 박 대통령은 서상기 이진복 이학재 이정현 등 측근 의원들을 대거 대동하고 미국을 방문 스탠포드대에서 특강을 통해‘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언급하는 등 대권 가도를 본격 시작했다.



친박 반대와 다른 잠룡과의 의견 조율이 관건


향후 1년 반 가량 전국단위 대규모 선거가 없는 상황에서 개헌 필요성에 호응하는 야당과 당내 개헌 찬성그룹을 규합한다면 김 대표의 개헌론이 실현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당장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이 알려지자 적극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정치개혁의 근본적 문제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본다”며 환영의 뜻을 드러냈다. 


우 원내대표는 “87년 체제는 이미 수명을 다했고 과반수의 여야 의원들이 동의하고 있는 만큼 바로 결단해야 할 미룰 수 없는 문제”라며 “갈등이 많은 우리 나라는 다수결에 의한 승자독식보다는 합의에 의한 분권형 권력주로서 오스트리아나 독일 같은 나라가 전형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김 대표가 언급한 개헌 방향까지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박 대통령 및 친박 그룹의 반대에다 여권 내 다른 대선주자들의 각기 다른 입장을 감안하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당장 김문수 위원장은 혁신특위 논의에 개헌을 포함시키자는 당내 일부 의원들의 의견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고, 홍준표 경남지사도 “대통령 동의를 얻어 정권 말에 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한국일보




[개헌'…朴이 막아도 급물살 탈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사진=윤창원 기자)




'봇물'과 '불쾌'가 정치권의 화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6일 중국에서 개헌과 관련해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밝히자 청와대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무성 대표는 3박4일 일정의 중국 방문 마지막날인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며 "봇물이 터지면 막을 길이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김 대표는 "우리 사회가 철저한 진영 논리에 빠져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All or Nothing' 게임이기 때문에 권력 쟁취전이 발생하고 권력을 분산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이제는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야 사회 안정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개헌론이 시작되면 경제활성화가 방해받는다는 지적은 맞다"면서도 "다음 대선에 가까워지면 개헌은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개헌은 경제를 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한 것이다. 




청와대는 불쾌해했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하겠다는 것이냐'는 말까지 한다. 

친박 인사들도 좀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김 대표의 개헌론 봇물 발언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지난달 비주류를 중심으로 개헌론이 나왔을 당시 "권력구조 문제는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지만 지금 시점은 분명히 아니다"라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















◈ 이완구 원내대표도 대표적인 내각제 개헌론자 

이완구 원내대표는 김종필 자민련 총재 시절 철저한 내각제 개헌론자였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친박계 한 인사는 "김 대표가 엊그제까지는 시기가 아닌 것처럼 얘기했는데 왜 중국에서 개헌 '봇물 발언'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였다. 

박 대통령이 다음 주 월요일인 20일 수석비서관 회의 자리를 빌려 김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에 대해 언급할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정치권, 특히 여당 지도부의 개헌론에 대해 쐐기를 박고 나올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체 하고 넘어갈 것인지 박 대통령의 의중과 결정이 주목된다. 






◈ 김무성, "대통령께 죄송하다"며 한발 뺐지만… 

그런데 김무성 대표는 17일 아침 "민감한 개헌 발언은 불찰이며 대통령에게 죄송하다"며 한 발 물러섰다. 

일보 후퇴하는 길을 선택했으나 '치고 빠지기' 수법으로 볼 수 있다. 

그는 그러면서도 "개헌 논의는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래부터 개헌론자로 4년 중임제 개헌론자였다. 

그런 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생각이 변했다. 

그의 말처럼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 쪽에 가 있다. 

외교·안보·국방 등의 외치는 국민이 직접 선거를 통해 뽑는 대통령이 맡고, 경제와 사회문제 등 내치는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주도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고 있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시절부터 한국 정치권과 사회의 진영논리 싸움에 진절머리를 냈다. 

그는 16일에도 그런 말을 했지만 사석에서도 "대한민국이 좌우, 보수와 진보라는 진영 논리·싸움에 빠져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를 보면 정말이지 되는 게 없다"고 한탄하곤 했다. 



◈ 새누리, 이인제·김태호·이재오도 개헌론자 

이 부분에서 이재오 의원도 "언제까지 갈라서 싸워야 하느냐"며 "이제는 통합으로 가야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도, 김태호 최고위원도 "당파싸움을 그만하기 위해서는 87년 헌법체제를 바꿀 때가 됐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해왔다. 

야당은 김무성 대표의 '개헌 봇물 발언'이 나오자 즉각 환영했듯이 개헌론이 거의 당론이 되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이 법정 기일 내에 통과되고 법안 처리가 매듭지어질 즈음인 12월 20일쯤 되면 개헌론은 봇물을 넘어 둑이 터지는 형국이 국회에서 벌어질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자료사진/청와대 제공)




문제는 청와대와 친박 의원들의 입장이다. 

청와대는 경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라며 개헌론의 자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국회는 '시간이 없다. 지금이 적기'라며 맞설 것이다. 

대통령이 반대하는 개헌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또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 수 있겠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많다. 

결국엔 김무성 대표가 박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에 친박의 좌장이라는 서청원 최고위원이 적임자라는 의견도 상당하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개헌론이 거세지면 청와대도 마냥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그 때가 되면 서청원 최고위원을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원조 개헌론자인 서청원의 역할 주목할 수밖에 

서청원 최고위원만이 박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정치인이라는 설명이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90년대 중반부터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로의 개헌론자였다. 

지금도 그는 변함없는 헌법개정론자다. 
시기만이 김무성 대표 등과 다를 뿐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사진=윤창원 기자)

서 최고위원은 지난 7월 9일 전당대회 도중 "개헌을 해야 하지만 금년은 국가개조와 경제성장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타이밍에 맞지 않는다"며 "내년 쯤 당에서 논의해 총선 공약으로 내걸 사안이 아닌가 한다"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그런 그도 7.14 당 대표 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이후 입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 측의 한 관계자는 "서 전 대표님은 통일헌법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크다"면서 "언젠가는 통일헌법을 매개로 개헌론에 동참하거나 주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 시기는 내년 초다. 

서청원 최고위원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을 돌파하기 위해서라도 서청원 방식으로 개헌론에 동참할 것이라는 관측이 주변에서 나온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선출직 최고위원 5명 가운데 박 대통령이 가장 신뢰하는 정치인임은 자타가 인정한다. 

그래서 서청원 최고위원이 개헌론에 동참하는 날이 개헌론이 가장 큰 탄력을 받는 날로 기록될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청와대 설득의 몫도 김무성 대표와 함께 서청원 최고위원이 나눠질 수도 있다

서청원 최고위원이 지난해 말 이재오 의원이 개헌의 필요성을 거론할 때 지금은 적기가 아니고 2017년이라고 한 말을 상기해보면 박 대통령과의 코드를 맞춘 발언으로 읽힌다. 

청와대도 개헌에 대해 완전히 부정적인 게 아니라 시기상으로 지금이나 내년이 아닌 총선이 끝난 2016년 후반기나 2017년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새누리당 지도부와 야당 지도부가 합세해 개헌특위를 구성하고 개헌론에 들어갈 경우 청와대가 마냥 반대하다가는 그야말로 권력의 블랙홀에 먼저 빠져버릴 수 있다. 


정당별 개헌 찬반 분포 (단위: 명) (출처=CBS 정당팀)



◈ 개헌은 블랙홀이 아닌 청와대의 '만능키' 


여당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개헌론을 허용하면 블랙홀에 빠질 것을 우려하는데 그렇지 않다"면서 "오히려 청와대가 여·야 정치권을 입맛에 맞게 요리할 수 있는 청와대 권력 강화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개헌이 청와대 입장에서도 국정운영의 '만능키'가 될 수 있고, 국가 개조의 ‘만능키’가 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거부하든, 지지하든, 친박 인사들이 반대하든 말든, 개헌론의 봇물은 이미 터졌고, 개헌 열차는 속력을 내느냐, 못 내느냐의 정치 현안이 됐다

87년 군부독재와 장기집권을 막기 위한 산물인 87년 헌법의 생명이 이제 시한부를 향해 째깍째깍 소리를 내고 있다.


뉴시스




사견


김무성의 대권레이스는 시작되었다


김무성대권 후보론이 힘을 얻을수록 , 박근혜 대통령의 힘은 빠질것이다

뜨는해는 김무성이고, 지는해는 박근혜이다

박근혜대통령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될것이다


그이유는간단하다 .

박근혜는 종신대통령이 아니다, 임기 3년 남은 단임제 대통령이다

박근혜정권의 공과는 차기 대통령 ,아니 국민에 의해서 철처히 평가 받을것이다


국민, 국가는 영속하고, 통치자는교체되는것이 민주주의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왕조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