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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문화사 &시사

[한화 김성근감독] 야구 인생과 삶 그리고 도전




김성근(金星根)


1942년 12월 13일 ~ )







 대한민국 야구 선수, 야구 감독이자, 현재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다.


 별명은 잠자리 눈, 야구의 신(야신, 野神)이다.


김성근
Kim Sung-Keun
한화 이글스
기본 정보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1942년 12월 13일 (71세)
출신지일본 일본 교토 부 교토 시 우쿄 구
신장180 cm
체중82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좌투좌타
수비 위치투수
프로 입단 연도KBO / 1982년 - OB 베어스투수 코치
획득 타이틀1986년 올해의 감독상(OB), 2007 올해의 감독상(SK), 2008 올해의 감독상(SK), 2010 올해의 감독상(SK)
경력

선수 경력

코치 경력

감독 경력

기타 경력

  • 일구회 부회장 (2010년 ~ 현재)
  • 대한스포츠애널리스트협회(KSA) 회장 (2012년 ~ 현재)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아시아선수권1961년 대만
1963년 서울




학력


  • 교토 가쓰라고등학교 졸업


[선수시절]





재일교포 2세로 본적은 경상남도 진양군이며 1942년 일본 교토 부에서 태어났다. 일본명은 가네바야시 세이콘(일본어: 金林 星根かねばやし せいこん)이다.







 교토 가쓰라고등학교(京都府立 桂 高等學校)에 재학 중이던 1959년, 제4회 재일동포 학생 모국 방문 경기를 통해 처음으로 대한민국 땅을 밟았고 고교 졸업 후 일본 사회인 야구 팀인 교토상호차량에서 뛰다가 1960년 재일교포 성인 구단 방문 경기를 하고 나서 동아대학교에 스카우트되었다. 


동아대학교를 중퇴하고 대한민국 실업 야구에 투신, 1961년 교통부에 입단한 그는 이듬해 대한민국에 완전히 정착하고 기업은행의 창단 멤버가 되면서 1969년 초까지 활동했다.

 


좌완 투수로 빠른 직구를 주 무기로 삼아 1961년 제4회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때 대표팀에 선발되어 대한민국을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1963년 11월 13일 대통령배 가을 리그 인천시청과의 경기에서는 볼넷 1개만을 내주며 노히트 노런을 기록, 1964년 실업야구 연맹전에선 다승 공동 2위(20승 5패)에 오르는 등 놀라운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한 후 야수로 전업했고, 1969년 이른 나이에 현역에서 은퇴했다. 







선수로 뛰었던 1967년 현재의 아내 오효순과 결혼하였으며, 은퇴한 후 다음 해 마산상고 감독을 맡을 무렵에 아들 김정준이 태어났다.





[감독시절]




프로 야구 지도자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투수 코치였던 김성근은 1984년  1988년 OB 베어스 감독을 시작으로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등 무려 5개 팀 감독을 맡았다. 






만년 하위권이었던 태평양(1989년, 3위)과 쌍방울('96-'97, 2위-3위)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켰으며, 2002년 침체에 빠져 있었던 LG의 사령탑을 맡아 팀을 2002년 한국시리즈에 올려 놓고 LG 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나 구단 고위층과의 갈등을 빚으면서 석연치 않게 퇴진했다.





 당시 LG 트윈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이른바 '신바람 야구'를 슬로건으로 내건 자율 야구를 지향하는 팀이었으나, 이른바 '데이터 야구'가 팀 컬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2006년 당시 한국 프로 야구감독으로 활동한 15년간 통산 866승(803패 43무, 승률 0.519)을 거둬 김응용  한화 이글스 감독의 1,463승(22년간, 1125패 65무)에 이은 역대 2위를 기록 중이다. 


태평양, 쌍방울, LG 등에서 하위 팀을 상위로 끌어 올리는 데 탁월한 능력을 검증받았으나, 한국시리즈 우승은 2007년에서야 처음으로 이루었다


현재 지도자로 활동하는 코치나 감독들 중 김경문 조범현, 박종훈, 김기태 등 여러 지도자들이 현역 선수 시절에 그의 손을 거쳐 갔다.





 특히 박종훈의 아들인 박윤 SK 와이번스 소속이어서 아버지를 이어 2대째 손을 거쳤다. 또한 그가 맡은 팀의 선수들은 시즌 중에는 물론 비 시즌 기간에도 이른바 '지옥 훈련'이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훈련 량을 소화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바탕으로 많은 백업 요원들을 주전과 맞먹게 양성하였으며, 박정환 등의 몇몇 타 팀 방출 선수들도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부활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특징은 고양 원더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


KBO 특별기획 야구를 말하다 - 김성근 편



   





김성근 90년대 쌍방울 감독 다큐 










한화 이글스 (2015년~)






한화 팬들, 직접 나서 “‘야신’ 영입해달라” 


 


2014년 10월 25일 한화 이글스와 3년 20억에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김응용도 못 바꾼 꼴찌... 한화의 대안은 결국 김성근? ]




최근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한창인 가운데, 가을야구보다도 더 팬들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팀이 있다. 바로 올해도 변함없이 꼴찌를 차지한 한화 이글스다.

한화는 올해로 3년 연속 꼴찌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 최근 7시즌 연속 4강 진출에 실패했고 이중 5번을 최하위로 마쳤다. '5-8-8-6-8-9-9' 한화의 최근 7시즌간 리그 순위다. 

김응용도 못 바꾼 '꼴찌' 한화

지난 2년간은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는 우승청부사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고도 9개구단 체제에서 사상 첫 2회 연속 9위의 오명을 남겼다. 한화와 2년 계약을 맺었던 김응용 감독은 시즌 종료와 함께 퇴임이 확정된 상황이다.

올 시즌이 끝나고 4강 진출에 실패한 구단들은 저마다 감독교체와 팀 개편을 통해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4강에 탈락한 팀 중 롯데(김시진), 한화(김응용), 두산(송일수), SK(이만수)는 이미 기존 감독들이 물러났고, KIA만 선동열 감독과 2년 재계약을 맺었다. 두산은 김태형, SK는 김용희 신임감독을 각각 임명하며 발빠르게 후속조치에 나서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롯데와 한화뿐이다. 롯데의 경우 아직 차기감독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내부 승격설이 어느 정도 유력한 상황이다. 하지만 한화의 경우는 이미 김응용 감독의 퇴임이 기정사실화된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후임 감독에 대한 소식이 오리무중이다. 내부 코치진의 승격이나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의 영입, 혹은 외부에서 베테랑 감독의 영입설 등이 끊임없이 거론되고 있지만 구단 측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후보군을 밝히지않은 채 함구하고 있다.

한화가 후임 감독 선정에 유난히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역시 7년째 최하위권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고있는 현 주소 때문이다. 지난 시즌에는 선수 영입에만 18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FA와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으나 여전히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인식, 김응용 감독처럼 경력이 풍부한 베테랑 감독도, 한대화 감독같은 스타 출신 지도자도 영입해 봤지만 모두 팀의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KT의 가세로 내년부터 10구단 체제로 전환되는 프로야구에서 한화가 또다시 사상 최초 10위의 불명예를 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장기화되는 팀의 부진에도 꾸준히 한화를 믿고 성원해준 팬들조차 이제 더는 똑같이 시행착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커지고 있다.

차기 감독의 화두는 역시 리빌딩이다. 올시즌 최하위에 그친 성적에도 김태균-정근우-펠릭스 피에 등이 버틴 타선은 어느 정도 경쟁력이 있다. 이용규가 다음 시즌 부상을 털고 완벽하게 복귀하면 수비와 주루플레이도 더 향상될 여지가 남아 있다. 투수진에서도 올시즌 가능성을 보여준 이태양과 윤규진, 안영명 등 젊은 투수들이 성장하고 있다. 신인지명에서 김범수와 김민우 등을 영입하며 미래를 대비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구슬들을 꿰어 보배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장인의 부재다. 몇 년째 계속되고 있는 희망고문에도 불구하고 한화의 리빌딩이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는 데는 결국 선수육성과 리더십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리빌딩이란 마냥 젊은 선수들만 데리고 되는 것도 아니고, 성적을 포기하면서 가능한 것도 아니다. 선수의 재능을 발굴하는 육성 능력도 중요하지만, 한정된 전력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지략, 구단 운영의 크고 작은 부분까지 관여하며 선택과 집중을 이끌어낼 수 있는 행정가적 안목도 필요하다.

김인식이나 김응용 감독은 단기간에 성적을 내는 유형의 감독이지 오랜 시간을 두고 팀을 재건하는 역할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두 감독은 좋은 선수들과 감독을 보좌하는 확실한 시스템이 갖춰진 환경에서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했다. 한대화 감독은 코치 경력은 풍부했지만 한화에서 프로 1군으로 첫 감독 데뷔를 했던 사령탑이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팀을 바닥부터 다시 만들어가는 노하우를 기대하기에는 상황이 너무 열악했다.


결국 한화의 대안은 김성근 감독? 

국내에서 현재 리빌딩이라는 조건에 부합할 만한 경력을 검증받은 인물은 많지 않다. 그나마 성공적인 리빌딩 경력이 있는 사령탑 중 조범현 감독은 KT를 맡고 있고, 김경문 감독은 현 NC의 사령탑이다. 많은 이들이 리빌딩하면 떠올릴 만한 인물 중 현재 재야에 머물고 있는 거물급 지도자은 사실상 김성근 감독 한 명뿐이다.

일부 한화 팬들이 김성근 감독의 영입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김성근 감독의 스타일 또한 한화에 잘 어울린다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성근 감독은 과거 쌍방울, LG, SK 사령탑 등을 거치며 부임 당시만 해도 그리 강하지 않았던 전력을 물려받아 정상권으로 끌어올린 숱한 경험이 있다. 차원이 다른 훈련량과 선수 장악력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김성근 감독은 외부 간섭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이다. 김인식, 김응용 등 노장 감독들이 계약기간을 별 탈 없이 마친 데서 보듯 한화는 프론트의 역할을 둘러싼 구설수도 다른 구단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아직 공식적으로 한화와 접촉한 적이 없다며 차기 감독설을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성근 감독이 현재 한화가 필요로 하는 사령탑의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인물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두 가지 걸림돌도 있다. 
첫 번째는 한화 구단이 과연 '김성근 스타일'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의지의 문제다. 

김성근 감독은 야구 스타일과 팀운영에 관하여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다. 이 과정에서 구단의 방향성을 놓고 프론트 측과 자주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장 김성근 감독을 영입할 경우, 그가 원하는 코치진이 함께 동행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기존 프랜차이즈 출신 코치진의 대규모 인적 개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LG이나 SK가 그러했듯이 기존의 팀컬러가 확고한 구단들도 김성근 감독의 영입과 동시에 철저히 '김성근화'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동안 대부분 김성근 감독을 원하던 팀은 성적에 대한 갈증이 시급한 경우였지만, 일정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성적이 나온 뒤에 반드시 뒤끝이 좋지 못했던 것은 이러한 김성근 스타일의 부작용과도 무관하지 않다.

두 번째는 김성근 감독에 대한 지나친 판타지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육성의 귀재라는 평가와 함께, 선수를 혹사 시킨다는 상반된 평가도 받고 있다. 김 감독의 스타일이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선수들이 많은 한화에서는 그야말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가능성도 있다. 

아무리 김성근 감독이라고 해도 한화가 당장 하위권을 탈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김성근 감독이 이전에 맡았던 LG나 SK는 기본적인 전력 자체가 나쁜 팀은 아니었다. 
김성근 감독의 야구가 탄탄한 투수력을 기반으로 한 '벌떼야구'라고 했을 때, 지난 시즌 역대 최악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한화는 1990년대 김성근 감독이 지도했던 쌍방울이나 태평양의 초창기를 능가할 만큼 인적자원이 열악한 상황이다. 제아무리 '훈련의 천재' 김성근 감독이라도 선수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기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한데, 어느덧 70대 중반을 바라보는 고령의 김성근 감독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계약기간과 전권을 보장할지도 미지수다.

은 한화가 결국 김성근 감독이 아닌 '제 3의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도 여전히 높다. 한용덕 단장보좌역과 이정훈 2군 감독 등 한화 프랜차이즈 출신으로 명망이 높은 야구인들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물론 누가 되든 김성근 감독만큼의 명성과 신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동안 전임자들의 실패로 인하여 누적된 팬들의 불만이 폭발하는 후폭풍으로 이어질수도 있다. 만일 다른 인물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구단 측이 오래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신속하게 정면돌파해야 할 필요도 있다.

한화에게 올 겨울은 길지 않다. 신임 감독이 당장 선임되어 2015시즌과 팀의 리빌딩을 준비하기에도 갈 길이 빠듯하다. 정치적 이유나, 순간의 여론에 휩쓸리기보다 팀의 미래를 위한 최적의 대안이 무엇인지, 신중하면서도 신속한 행보가 필요한 지금이다.

오마이뉴스



야신’ 김성근, 한화 사령탑 확정…3년 총액 20억원



계약금 5억원, 연봉 5억원 파격 계약
3년 연속 꼴찌 수모, 야구팬 염원 반영






‘야신’ 김성근 감독의 행선지는 예상대로 한화 이글스였다.

한화 구단은 25일 “김성근 감독과 계약기간 3년, 총액 20억원(계약금 5억원·연봉 5억원)에 계약을 맺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성근 감독은 내년 시즌부터 2017년까지 한화를 이끌게 된다.

최근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면서 김성근 감독의 거취는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마침 한화, KIA, SK,두산, 롯데 등 4강 탈락 팀들의 감독 교체가 유력해지면서 김성근 감독의 복귀는 기정사실로 된 가운데 행선지를 놓고 갖가지 소문이 무성했다.

특히 롯데, 한화, KIA 팬들 사이에선 ‘김성근 모시기 경쟁’이 뜨거웠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웃음을 지은 건 초반부터 가장 유력한 팀으로 거론됐던 한화였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 OB 베어스 감독을 시작으로 5개 팀의 사령탑을 거치며 통산 1234승 1036패 57무의 성적을 올렸다. 2002년 하위권에 멤돌던 LG를 한국시리즈까지 끌어 올렸고, SK에서는 한국시리즈 3회 우승을 일궈내며 전성기를 누렸다. 무엇보다 김성근 감독의 퇴임 후 LG와 SK의 순위가 추락을 면치 못해 상대적으로 지도력이 더욱 부각됐다.

김성근 감독은 강력한 카리스마와 혹독한 훈련, 조직력을 앞세운 야구가 특징이다. 3년 연속 꼴찌에 머문 한화가 김성근 감독을 만나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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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훈련 벌써 시작, 꼴찌가 어디서 놀아? 휴일 없다"… 한화 이글스의 새 사령탑에 오른 김성근 감독과의 인터뷰입니다http://t.co/Wwocs9ElyX http://t.co/mtKtYZ9PTV








[김성근야구구인생 ]




김성근의 돌직구 "야신은 없다" 










[야구를 위해 살다]


Kim, Sungkeun 
Master of Baseball
야구를 위해 살다

 

Kim, Sungkeun (6).jpg

 

솔직히 겁이 났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가 ‘야신’을 만나야 한다니.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기라도 한 듯 막막했다. 그렇게 ‘야신’을 만났다. 어떻게 됐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날의 공기를 기록한 녹음기에서는 무식한 자의 감탄이 자주 들려왔다.


 

<탐색전>


할아버지 야구 잘 하세요?” 눈발이 날리는 야구경기장 관중석. 글러브를 손에 든 꼬마의 물음에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쬐끔”이라고 대답한다. CF의 문맥상 대답을 하는 남자는 야구감독이다. 선수 혹은 코치라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CF의 주인공은 김성근 감독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나와 김성근 감독의 거리는 정확히 이만큼이었다. 


그와의 인터뷰가 확정된 후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김성근을 입력했다. 1942년 생, 일본에서 태어났다. 1984년 OB 베어스 감독으로 데뷔했고, 현재는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를 이끌고 있다. 기사 제목마다 그의 이름 앞에는 ‘야신’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야신’은 <남자의 자격>의 양준혁이 아니었던가?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김성근 감독님 인터뷰하기로 했어.” “대박”, “오!”, “야신을 만나다니” 지인들의 반응은 결국 하나였다. 친한 기자 K는 ‘야구계의 임권택’이라는 대유를 들어줬고, 학교 선배 P는 ‘야신’이란 수식어가 탄생된 2002년 삼성과 LG의 한국시리즈 6차전 경기를 중계해줬다. 친구 H는 ‘SK 와이번스에게 세 번의 우승과 한 번의 준우승을 안겨준 감독’, ‘선수를 잘 아는 감독’이라고 그를 설명했고, 친구 K는 ‘냉정하고 혹독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김성근이다>



2011년 12월에 출간된 <김성근이다>는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 한 인생 이야기’라는 부제 그대로 감독 생활을 하면서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사적인 정이 선수들의 성장에 방해가 될까봐 선수들과 밥 한 끼, 차 한 잔을 함께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부터 선수들의 연습을 지켜보기 위해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다음날부터 병원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는 일화,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에 관한 이야기, 자신이 사용하는 도구에 애착을 가지라는 뜻으로 공을 발로 차거나 배트, 글러브를 던질 때마다 벌금을 걷었다는 일화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그와 함께 나누고 싶은 대화 주제의 윤곽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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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다>



3월 12일 10시 40분, 고양야구장에 도착했다. 햇볕은 쨍한데 바람이 불 때마다 옷깃을 여미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프레스룸에 짐을 풀고 그의 호출을 기다렸다. 야구장에서는 고양 원더스 선수들이 1시부터 진행될 동국대와의 경기를 위해 몸을 풀고 있었다. 탁탁. 야구 배트와 공이 맞부딪히면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려왔다. 



대기 40분 째. 고양 원더스 홍보 실장의 말이 떠올랐다. 감독님이 너무 바쁘셔서 얼굴을 뵈려면 기본 1시간은 기다린다고 말했었다. 김성근 감독은 회의 중이었다. 홍보 실장과 조율된 인터뷰 시간은 30분 남짓. 커버 사진 촬영을 진행하려면 20분 안에 인터뷰를 끝내야 한다. 불필요한 질문은 없는지 질문지를 다시금 살펴봤다. 자꾸만 갈증이 났다. 



그로부터 10분 뒤, 코치가 감독실로 우리를 안내했다. 문이 열리자 서리가 내린 짧은 머리와 곧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보도 사진 속 모습보다 마른 모습이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가 짧게 답인사를 했다. 그의 얼굴은 굳어있었다. 포토 에디터가 정해준 자리에 그와 내가 앉았다. 정면으로 마주한 얼굴 역시도 굳어있었다.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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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시작, 고양 원더스>




고양 원더스에 기대하는 시선들이 많은데 부담감은 없으세요?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고, 우리나라 사회에 소위 말해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사람들한테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잡이가 돼야 하니까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되지 않나 하는 부담감을 갖고 있어요. 


 

고양 원더스의 향방이 독립구단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시작이니까 우리가 잘 됨으로써 제2, 제3의 독립구단이 생길 거고, 그로 인해 야구인들을 한 명이라도 구제할 수 있는 거고. 또 야구 시장 자체에 큰 변화가 오지 않나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일을 중요한 일이라고 보고 있어요.


 

사명감이 크시겠어요. 
당연한 거예요. 일이라는 것은 사명감을 갖고 하는 거니까.


 

프로야구 감독 시절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 
프로에서는 우승이 목표고 여기는 순위가 목표가 아니라 선수 개인의 육성이나 성장이라고 그럴까. 개인의 미래를 중요시하는 조직이에요.


 

우승이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프로야구 감독 시절보다 부담감이 덜 하지 않나요? 
우승이라는 목표가 확실히 있는 게 오히려 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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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그리고 리더로 산다는 것>


감독님이 쓰신 책(<김성근이다>)을 읽었는데 야구, 그리고 선수를 위해 스스로에게 너무 혹독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도자는 자기를 몰아가야 돼요. 자기가 편해지려고 하는 지도자는 목표, 목적을 달성할 수 없어요. 선수가 나한테 들어오는 한 책임져야 되는 일이고, 내가 특혜를 본다든지, 이득을 본다든지 하는 건 시작부터 틀렸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도 많은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만큼 그에 따른 보상, 개인적으로 얻는 게 있어야하지 않을까요? 
뭘 얻으려는 생각은 하나도 없고, 선수들이 잘 될 때 거기서 잠시나마 뭐랄까 만족감이라고 그러면 이상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그럴까.

 


그거면 충분하세요? 
충분하다기보다 시작부터 그런 거니까. 야구장에 있다는 거 자체가,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 속에 살 수 있다는 거 자체가 제일 행복한 거 아니야.


 

물론 그렇지만 힘드시진 않으세요? 
힘이 든다고 느낄 때는 이 자리를 떠나야지. 힘들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선수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매일이 도전이니까 잡념이 생길 여지가 없어요.


 

20대 후반에 처음 감독직을 맡으셨잖아요.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생각이셨어요? 
처음부터. 지도자는 소위 이야기하면 봉사니까. 아버지, 엄마하고 똑같은 거예요. 뭘 얻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사명감, 의무, 그 속에서 하는 거죠.


 

지도자로서 사시는 게 적성에 맞으신가 봐요. 
원래 맞았던 건지, 살다보니 그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격 자체가 야구에 한해서는 굉장히 꼼꼼한 편이에요. 그리고 남의 일을 내 일 이상으로 취급하니까. 내가 오늘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돼요.  

 

그런 마음가짐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지도자의 본성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지도자들이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건 순수함이라고 봐요. 리더는 순수함을 가지고 살아야 돼요. 진실로 부닥쳐야 되고. 

 

포커페이스라고 하죠. 선수들이 흔들리지 않고 따라올 수 있게 리더로서 평정심 유지를 잘 하시는 거 같은데, 비결이 있으신가요? 
실수는 감독의 잘못에서 시작된다고 보면 돼요. 선수가 미숙한 건 감독이 미숙해서에요. 그렇게 보면 간단해요. 화를 낼 필요가 없어요. 모든 책임은 감독 본인한테 있지, 선수한테는 없는 거예요. 실수한 선수는 다시 가르치면 돼요.

 

그렇게 생각하면 자책감이 많이 들 거 같아요. 
자책감이 생기지. 당연하지. 언제나 나 스스로 모자란다고 느끼지. 그때마다 뒤돌아보든지, 공부를 하든지,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요.

 

스포츠는 결과가 중요하잖아요. 감독님 생각에 스포츠에서 이긴다는 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이긴다는 결과가 있음으로써 과정이 사는 거니까. 리더 입장에서는 결과를 반드시 가져야지. 그러려면 필사적으로 이겨야 돼요.

 

늘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은 없으셨어요? 
당연히 있죠.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압박감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그 속에 산다는 거 자체가 사람을 강하게 만들고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감독님은 타협을 안 하시는 걸로도 유명하세요. (웃음) 타협하는 게 어려우세요? 
타협은 없어요. 결단을 내리면 그대로 가요. 흔들리지 않아요 절대로. 옆에 맞추고, 뭐 맞추고 하질 않아요. 내가 살겠다 할 때는 타협하겠지. 그런데 나 스스로 살겠다는 마음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을 해야 되는 게 중요한 거지, 살겠다고 하는 건 목적 자체가 틀린 거예요. 

 

타협하지 않고 산다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좋은 지도자가 되는 걸 떠나서 타협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 하고자 하는 일의 성패가 결정된다고 봐요. 타협 하지 않는다는 건 리더로서의 나의 의사표시니까 자연히 정신이 반영되어 따라와요. 물론 그 속에는 책임감이 반드시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거는 거예요. 어느 기업이든, 조직이든 간에 가고자 하는 길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결단을 내리기까지 깊은 생각을 하고 일단 결단을 내리면 어떤 상황이 와도 바꾸면 안 돼요. 그래야 하나의 일을 해낼 수 있지. 더 나아가서 그렇게 하다보면 주위에서 인정하고 따라와요. ‘아, 이 사람은 한 번 내리면 안 된다. 이 조직은 이런 조직이다.’ 그 속에서 살 수 있는 거지 옆에서 흔든다고 흔들리고, 맞춰서 살다가는 본인이 없어져요. 

 

어떤 감독이 좋은 감독일까요? 
조직이 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사람. 그게 제일 간단한 말이에요. 우승하고 싶다, 4강 들어가고 싶다, 목표가 다 있을 거 아니에요. 그 목표를 달성하는 게 리더의 역할이에요. 이 책 같은 경우도 몇 만부 팔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으면 전략을 세워야지. 책 내용부터 구성, 판매 방법, PR, 여러 가지가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걸 리더가 다 계산해야지.

 

리더들만 모아놓고 강의하셔도 되겠어요. 리더들이 많은 걸 배울 거 같아요. 
그래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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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할 때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감독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아직까지 모자란 게 너무 많아요.

 

어떤 부분이요? 
세상살이라는 건 순간순간의 대처 능력이 필요한데 그게 아직까지 부족하다고 봐요. 어떤 변화에 본인 스스로 얼마나 민감하게 움직일 수 있느냐 하는 거요.

 

우여곡절을 겪으며 지금까지 현역 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힘은 뭘까요? 
진실과 우직함. 그리고 득을 보려 하지 않은 것. 그 세 가지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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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야구를 통해서 인생을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가장 크게 얻은 가르침은 뭐였나요? 
야구라고 하는 건 속임수가 통하지 않아요. 자기가 갖고 있는 실력으로 승부가 갈려요. 인생이라는 것도 순간순간의 재치로 넘어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직한 사람이 이겨요. 토끼와 거북이를 생각하면 돼요. 토끼는 재주 부리고, 요령 피우면서 자기 스스로가 변화를 갖잖아. 거북이는 아니거든. 인내를 갖고 그 상황을 대처하면서 뒷걸음 치지 않고 한발 한발 앞으로 걸어 나가요. 그게 인생이에요. 

 

감독님은 거북이처럼 한발 한발 걸어오신 거 같으세요? 
순간순간을 중요시해온 거지 쉽게 가겠다, 출세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거북이처럼 살아야지 하는데 나도 모르게 토끼처럼 사는 거 같아요. 빨리 안정되고 싶고, 빨리 뭔가를 이루고 싶고. 
그렇게 살면 빨리 올라갈지는 몰라도, 올라가면 내려가는 길이 기다리고 있다고. 성과를 빨리 원하는 사람은 모든 일이 다급해져요. 결과보다 그 순간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는가가 중요해요. 그렇게 살다보면 나중에 바깥에서 평가를 해주겠지.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곧은 마음으로 열정적으로 살 수 있게 영향을 미친 게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나는 야구선수로서 소질이 없었던 거예요. 뭐랄까. 강한 신념을 갖고 있으면 인생이라는 건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는 거예요. 그냥 허술한 신념이 아니라 이거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서 나오는 신념. 여유 속에 있는 신념은 도망가게 돼있고, 이유를 붙이게 돼있다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 다음을 생각했어요. 뭐뭐를 하겠다. 코치 생활을 할 때도 다음에는 뭐뭐를 하겠다. 이런 건 빨라요. 미련이 없어요. 딱 설정하면 그 설정을 달성하려고 해요. 나 스스로의 힘으로 하려고 하죠.

 

어떻게 미련이 없을 수 있지. 그런 부분은 타고나셨나 봐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서인지 몰라도 그 자리 그 자리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하되 지나간 순간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요. 예를 들어 우승을 했다. 우승하는 순간 이미 다음을 생각해요. 그 속에 도취 안 돼요. 이겼다 하는 건 그 순간으로 끝나는 거지 그 다음부터는 기록이고, 아무 가치도 없는 거예요.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으스대고 싶어 해요. 난 그런 건 없어요. 그날 경기에서 모자란 부분이 뭐였는지, 이걸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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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서 봐라>


말을 아끼시는 편인 거 같은데 책을 두 권이나 내셨어요. 책을 낸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옆에서 하자하자 해서 했다 뿐인데, 한 가지 이야기를 하면 18살 재일교포 학생으로 대한민국에 처음 왔을 때 운동선수는 무식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일본에서는 그런 식으로 의식하지 않는데 우리나라는 그렇더라고. 그거에 대한 반발이라고 그럴까. 공부를 한 사람만 유식한 게 아니에요. 공부를 안 하더라도, 학교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그 사람만의 특색이 있고 배울 점이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다 좋은 걸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그런데 우리 사회는 반드시 학력이 있어야 되고, KS마크가 붙어야 돼요. 사람들을 위해, 특히 CEO들을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사람으로서 사는 이치를 알려줘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한테는 진실이라는 게 있으니까. 그게 내가 책을 낸 목적이라고 봐요.

 

혹시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런 생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없으세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우직한 사람은 세상의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모자란다, 어떻다, 그런 이야기를 듣게 돼있다고. 그런데 그걸 견디고 이겨내는 거 자체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 SK야구 자체도 사회에 어필을 하고 싶었던 야구니까. 어떤 경우라도 생각만 바꾸면 얼마든지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걸 SK야구에서 가르치고 싶었고, 사회에 호소하고 싶었다고.

 

고양 원더스를 통해 사회에 호소하고 싶은 게 있으세요? 
절망은 없다. 어떤 생각으로, 무슨 방법으로, 어떤 식으로 자기가 여태껏 살아왔는지 뒤돌아보면 거기에 힌트가 있다고 반드시. 안 되니까 안 된다 그건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고 생각이 바뀌면 반드시 방법이 있는 법이에요.

 

훈련하실 때 선수들한테 정신교육도 함께 시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하세요? 
자기 한계를 자기가 설정하지 말라고 하지.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의 1/3도 못 쓰고 살고 있다고. 그 능력을 개발해야지. 어떻게 개발하느냐. 벼랑 끝에 서 봐라. 거기에 서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방법이 나올 거라고. 그게 자기 능력이라고.

 

생각만으로 벼랑 끝에 선다는 게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그죠. 자기가 절박함을 올려야지. 어떤 일을 하더라도 여유를 갖고 일하는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이에요. 자기를 몰아가야 돼. 이래서 되나, 이래서 되나 하는 사람하고 됐다, 됐다 하는 사람은 천지 차이에요. 예를 들어서 이 책의 목표가 얼만지 모르겠지만 5만부라고 해요. 5만부 팔리면 사람들이 좋아서 축배를 들어요. 근데 나는 왜 5만부밖에 안 팔렸나 생각해요. 의식의 차이에요. 거기서 이 책의 앞으로가 갈려요.

 

요즘 젊은 친구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타협이 빠르고 그게 통하는 세상이라지만 자기 인생은 자기 손아귀에 있지 남이 만들어주지 않아요. 일자리가 없다, 뭐가 없다는 건 자기 마음속의 결정이지 닥치면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고. 

 

<100원짜리 인생>
한국야구의 역사를 함께 해 오신 거잖아요.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어마어마하게 발전한 거예요. 발전했는데, 선수 개개인이 ‘야구 그만두면 뭘 하고 살지?’라는 절박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내가 볼 때 지금 성공적으로 야구 컨텐츠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싶어. 왜 그러냐면 겉으로 보이는 수채(水彩)보다 수채의 농도가 얼마나 짙느냐 하는 거지. 타자가 3할을 쳤다고 하면 어떤 내용의 3할이었는지 그걸 따지고 살아오는 사람이 몇 있나 싶어.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고 3할 타자가 됐을 때 나머지 실패 7할에 대한 추궁, 3할 안의 내용, 3관왕이 됐다, 홈런왕이 됐을 때 나머지 못 치는 타석에 대한 취조, 이 속에 들어가는 게 부족하다고 봐요. 그러면 이길 수 있다고. 그걸 안 쫓아가니까 못 이기는 거지. 만족이라는 건 없어요. SK야구는 그런 식으로 가르쳐놨다고. 우승을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원인을 따지고, 그걸 갖고 한 달을 고생하니까. 조직의 힘이라는 것도 가르치고, 조직에서 자기가 어떤 위치라는 것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선수들이 굉장히 고달팠을 거예요. 하지만 고달팠으니까 그만큼 성장했다고. 

 

감독님은 스스로 만족하신 적 없으세요? 
없어요. 항상 아쉽지. SK 우승했다. 이리 이겼으면, 저리 이겼으면 하는 아쉬움이 생겨.

 

일정 수준의 만족은 스스로를 발전시키지 않나요? 
아니. 만족하면 바로 후퇴에요. 안일해지는 거지. 항상 부족하고 불만스럽고 불안해야 돼.

 

불안하면 잘 할 것도 못 하지 않을까요? 
불안함 속에 있으면 안 돼. 불안함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내야지. 쉽게 얘기해서 나는 비관론자라고 보면 돼요. 부정적으로 본 다음 긍정적으로 바꿔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우리는 100원밖에 없어요. 비관해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100원을 가지고 만원을 이겨내야 돼요. 100원밖에 없는데 만원하고 싸우려면 먹을 것도 안 먹어야겠고 먹어도 1/3, 1/5 먹어야겠고, 잠자는 것도 다를 테고, 모든 게 다를 텐데 세상의 비난, 팬들의 비난, 매스컴의 비난을 의식할 여유가 어디 있어요. 갈 길 가야지. 그게 나의 야구에요. 나의 인생이고. 100원짜리가 만원을 이겨버리면 얘네들이 나중에 만원짜리로 바뀐다고. 그게 SK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시작하면 실패해요. 최악의 선을 그려놓고 만들어가야지. 고양 원더스도 일본 가서 전패한다는 생각으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까를 생각했지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그건 안일한 거예요. 절박하지 않고 행동에 뭔가 여유가 있다고. 모든 일은 절박함 속에서 일어나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세요?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하다보면 선수들이 뒤에서 ‘아, 이 감독은 믿을 수 있구나’ 하겠지. 그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봐요. 모든 길은 지나간 다음에 있는 거지 길을 미리 만들지 않아요 절대. 담담하게 갈 길 가는 거예요.

 

꿈이 있으세요? 
10살, 20살 정도 젊었으면 메이저리그나 일본 가서 감독하고 싶어요. 우리나라 야구인에 대한 길잡이에요. 나는 그게 많아요. 길잡이를 하니까 비난을 많이 받아요. 새로운 건 모든 게 부닥치게 돼있거든. 누구나 시작은 몸을 바쳐야 되니까 그 역할을 내가 할라고.

 

<야구를 하기 위해>
프로야구 감독직이 들어오면 수락하실 건가요? 
파운드에서 프로야구 구단 만들면 내가 갈게.  

 

진짜 만들고 싶은데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한 명이라도 프로에 보내주고 싶고, 이 팀의 존재 가치관이랄까 아까 얘기한 절망은 없다는 걸 세상 사람한테 알려야겠고. 또 내 코트에 있는 투수를 젊은 사람들한테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제일 중요하지.

 

잘하고 있어서 걱정은 안 되는데요. 
잘하고 있는 건 아니에요. 얘네들 자체는 잘하고 있는지 몰라도 세상하고 비교할 때 잘하는 건 아니에요. 이 정도 같으면 어림도 없어요. 대학교 팀은 완벽하게 이길 정도는 돼야지 2군하고 시합하고 쩔쩔매고. 이래서는 다음이 없다고 봐.

 

감독님이 해야 할 일이 많으시겠어요. 
이래갖고 되겠냐 할 때도 많고, 더 좋은 방법이 있지 않나,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길이 없나 찾지. 누가 봐도 이 팀이 이렇게 변한 거는 잘했다고 봐요. 어디까지나 제3자 입장에서. 내가 보는 건 아니에요. 세상 말에 ‘어차피’가 있고, ‘혹시’가 있고, ‘반드시’가 있어요. 어차피는 이미 포기한 거고, 혹시는 희망 혹은 의문을 가지는 거고, 반드시는 결사적인 거예요. 나는 ‘반드시’에요. 이게(녹음기) 있어요. ‘어차피 기계가 나쁘니까’, ‘혹시 이 기계가 변할까?’, ‘반드시 제대로 하게 만들어야지’ 생각의 차이에요.  

 

오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독님 인생에는 야구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 길이 있다는 게 사람한테 얼마나 행복한 일인데요. 팔방미인은 써먹지 못 해요. 내가 내 이야기를 하면 안 되겠지만 외길을 가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에요. 얼마 전에 만화가 이현세씨를 만났는데 그 사람도 그렇더라고. 외롭게 고생하고 싸우면서 만화가들이 가는 길을 만들어놨잖아.

 

감독님도 야구인들이 가는 길을 만들어놓으셨잖아요. 이 정도로 살아왔는데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기특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어요. 뭘 하느냐,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지.

 

야구 다 관두시고 나도 그런 생각 안 드실까요? (웃음) 
야구를 하기 위해 나의 인생이 있는 거지, 살기 위해서 야구가 있는 게 아니에요. 야구를 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한다고.




 

<그의 얼굴>


인터뷰가 끝이 났다.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던 인터뷰는 1시간을 넘어섰다. 인터뷰 내내 그는 처음 마주했던 그 얼굴 그대로를 유지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얼굴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은 단순히 굳은 얼굴이 아니었다. 그 얼굴 위에는 4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도전과 인내, 투지와 열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자랑스럽고 든든하게 느껴졌고, 참답게 보였다. 


살면서 종종 누구나 그런 순간들을 맞이하기 마련이다. 생각의 윤곽이 부서지려할 때, 선택의 기로에서 망설여질 때, 팍팍한 삶이 무겁게만 느껴질 때, 나약함 속에 허덕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할 때, 그때 그의 이야기를 다시금 곱씹어보려 한다.  

 

<김성근이라는 사전>


김성근이라는 사전이 있다면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를 채울 단어는 오로지 야구뿐이다. 그 안에 인생이라는 단어가 있고, 희로애락이라는 단어가 있다. SK와 고양 원더스, 신념과 사명감, 순수함과 우직함, 자책과 압박, 지도자와 리더, 거북이와 길잡이, 비관론자와 긍정론, 절박함과 고달픔이 있고, ‘반드시’가 반드시 있다. 하지만 그 안에 타협과 절망, 미련은 없다.




http://foundmag.co.kr/Interview/24473




[리더의자격]


야구계의 전설, ‘김성근’. 김성근이라는 세 글자를 발음하면 자연스레 ‘야신(野神)’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을 정도로 일흔이 넘은 노장에게 야구팬들은 야구의 신이라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데요. 그는 어떻게 야신이 됐으며 리더십의 교본으로 떠오른 것일까요? 오늘 블로그지기는 야신 김성근 감독의 인생을 되돌아 볼까 합니다. 



40년 넘은 인생의 8할을 오직 야구만 생각한 남자



효성효성그룹야신김성근 감독SK 와이번스프로야구KIA 타이거즈한국시리즈고양 원더스리더십






인간의 완성을 향한 노력은 일생일대의 기회를 만듭니다. 또 그것을 바탕으로 성장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성공하게 돼 있죠.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자신의 잠재 능력이 발휘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 김성근 감독



인생의 8할이 야구였던 재일교포 2세 김성근 감독. 그는 물로 배를 채우다 복막염에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을 정도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돈이 없어 야구 명문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할 기회를 놓친 그는 우연히 한국으로 스카우트 되는 행운을 만났지만 재일교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나고 자란 환경의 차이로 일본에 돌아간 그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마다 환경에 의해 발목을 잡히며, 프로 리그에 진출하지 못했지만 결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차선이던 사회인야구에 머물며 퇴근 후 밤새 야구 연습에 매진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것이죠. 주위에서 ‘독종’이라고 수군거려도 개의치 않으며 오로지 야구에만 몰입했을 정도로 세상에서 오직 야구만이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이기고, 그 조건으론 안 된다고 말하는 지극히 평범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그런 그의 노력과 생각은 김성근 감독을 팀 성적과 상관없이 일본사회인야구대회 교토 예선과 긴키대회에서 감투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줬습니다. 



그게 연이 되어 김성근 감독은 다시 한국 실업팀에 스카우트됐고 스무 살 재일교포 2세 김성근은 1962년 제4회 아시아선수권대회에 대한민국 대표로 당당히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벅찬 감동의 순간은 잠시 뿐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며 국내를 뜨겁게 달구던 좌완투수 김성근은 관광비자를 갱신하지 못해 한국에 들어올 수 없게 되며 그의 선수 생활의 큰 시련이 또 한 번 닥쳤습니다. 



그 순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야구를 포기하거나 일본 국적을 포기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성근 감독은 일본 국적과 가족 대신 한국야구를 택했습니다. 한국행 비행기 안에서 일본에 남은 어머니와 형, 누나를 그리며 가슴을 치며 울었지만 그 후로는 오로지 야구만 생각했다는 김성근 감독. 지나친 혹사로 어깨 부상을 당하고 이른 나이에 은퇴하는 순간에도 그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김성근 감독이 펼치는 놀라운 리더십의 밑천이자 오랜 뒷배였을지도 모릅니다.




스물여덟 살에 감독 생활을 시작해서 40년 넘게 한길만 걸어왔어요. 많은 역경 속에서도 나 김성근으로 살아온 것입니다.

- 김성근 감독



리더라면 시행착오를 두려워 마라




효성효성그룹야신김성근 감독SK 와이번스프로야구KIA 타이거즈한국시리즈고양 원더스리더십





쌍방울과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와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를 거쳐 SK 와이번스 감독으로 취임한 건 2007년. 2006년 6위로 시즌을 마감한 SK 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을 맞이하며 눈에 띄게 성장했습니다. 



첫 대면한 SK 선수들은 실력이 별로였어요. 특히 수비가 약했죠. 원바운드 송구뿐인 걸 목격하고 ‘뭐, 이런 야구가 있나’라고 생각했죠. 대안은 혹독한 훈련밖에 없었어요. 실전보다 더한 연습을 거치니 변화가 찾아오더군요. 저 또한 그라운드에서 함께 굴렀어요. 야구나 삶이나 비슷해요. 변하려면 변하겠다는 자세와 실제 행동이 수반돼야 해요. 

-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은 패배 의식을 안이한 야구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최고의 프로 선수에게 “너 이따위로 하려면 야구 하지 마라”라는 질책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을 던지는 선수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팀과 선수를 위한 조언이었고 정이 많은 속내를 들키지 않으려고 칭찬을 아꼈을 뿐입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를 강하게 만들려면 아프면 아프다, 힘들면 힘들다, 잘했으면 잘했다고 다 말해버리면 안 됐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시련으로 키운 SK 와이번스는 2007년, 2008년 연속 2회 정규 시즌 페넌트 레이스 1위와 한국 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 8월 25일부터 9월 26일 정규 시즌을 마감할 때까지 19연승을 거두며 최고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하지만 2009년 한국 시리즈에서 KIA 타이거즈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준우승에 머물며 시즌이 끝났고 김성근 감독에게 처음으로 야구가 싫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에 빠져 며칠을 지낸 후 그는 다시 몸을 추스르고 바둑을 복기하듯 한국 시리즈를 되짚어 봤습니다. 자신이 지켜내지 못한 경기를 생각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새 시즌을 준비했다. ‘리더가 흔들리면 팀원도 흔들린다’는 전언을 되새김질하며 비전을 꾸리는 그의 앞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목표와 도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리더는 아무나 버리지 않는다



효성효성그룹야신김성근 감독SK 와이번스프로야구KIA 타이거즈한국시리즈고양 원더스리더십







김성근 감독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야구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고 사실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몰리기 부지기수였습니다. 선수와 팀을 위해 고단하고 외로운 길을 걸었을 뿐인데 돌아오는 건 비난이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SK 와이번스와의 결별 역시 그 맥락의 결과였습니다. 이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김성근 감독은 남을 탓하기보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언제나처럼 야구만을 생각했고 그 결과 고양 원더스의 지휘를 맡기로 결정한 것도 오로지 야구만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그는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과거를 끊어내길 조언하며 동시에 SK 와이번스를 승리로 이끈 자신의 과거 또한 잊었습니다. 김성근 감독에게는 자신의 어떤 과거도 더 나은 미래로의 전진을 방해하는 모래주머니일 뿐이었습니다. 그 후 두 번째로 그가 시작한 일은 선수들의 몸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48일 동안 아침 6시 반에 깨워서 산책시키고 아침밥 먹이고 저녁 6시까지 움직이고 또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11시간 3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선수들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은 고작 15분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트레이닝은 개개인의 근육은 물론 나름의 신념마저 견고하게 만들었습니다. 프로 선수도 아닌 아마추어에겐 있을 수 없는 강도의 프로그램이었지만 묵묵히 따라준 선수들때문에 단 한 명의 이탈자 없이 훈련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리더는 어느 팀에 가든지 지금 현재 있는 것을 최대화하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고양 원더스는 올해 20승이란 불가능한 영역을 넘어섰어요. 프로 팀에 5명의 선수를 보낸 것도 마찬가지죠. 하지만 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선수들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할지 계속 생각합니다.

- 김성근 감독



언제나 김성근 감독은 고정관념을 버리고 어디에도 없는 방법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항상 더 어려운 길로 들어서는 걸 주저하지 않았던 선택이 본인의 성장 동력이었음을 믿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에게 익숙한 방법을 택하지 않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선수를 활용하는 것은 순전히 윗사람 능력입니다. SK 와이번스에 있을 때 선수가 모자라 쩔쩔 매는 일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하지 않았어요. 그보다 현재의 부족한 선수들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죠. 99개의 공을 제대로 못 던져도 1개의 공을 잘 던졌을 때 나는 그 1개에서 가능성을 찾습니다.

- 김성근 감독



세상 어디에도 버릴 선수는 단 한 명도 없다는 김성근 감독. 누구나 가진 한 가지의 장점을 발견하고 키워주는 리더의 역할을 그만큼 잘 해내는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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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근의 '21세기 장인(匠人) 리더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