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위안부 협상' 타결하다(기자회견 전문)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극적으로 타결지었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함께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아베 일본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시다 외상은 이와 함께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합의문 내용은?
KBS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합의한 내용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1. 위안부 문제가 군 관여하에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힌 문제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2.아베 총리가 위안부로서 고통과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하며,
3. 한국 정부가 위안부 지원을 목적으로 한 재단을 설립하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지원해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는 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다.(KBS, 12월28일)
사진은 1992년 1월 8일 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정기 수요집회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집회를 취소하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항의집회를 추모집회로 대신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정오에 빠짐없이 이어져 왔다.
한일이 공동기자회견에 발표한 전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재단 설입에 들어갈 예산으로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돈으로 약96억6,980만 원 가량이다.
이번 회담 결과로 인해 한일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크다.헤럴드경제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위안부 협상을 타결 지은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일 양국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상호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며 “이로써 그동안 한일 관계는 물론 미국, 중국이 엮인 다자관계에서도 늘 걸림돌이 돼 왔던 위안부 문제 부담이 상당히 해소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양국 외교장관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내용을 놓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다소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피해자 외면한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했고, 이용수 할머니는 타결 내용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 위한 생각 없는 듯"이라고 했다. 반면, 유희남 위안부 피해할머니 "정부 하신대로 따르겠다"며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위안부 소녀상'은 어떻게?
사진은 2011년 12월 14일 정대협이 1천번째 수요집회를 맞아 일본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소녀상을 세운 뒤 시민들이 따뜻한 정성과 위로를 담아 다양한 옷을 입힌 모습.
일본 정부가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정부가 사실상 '철거'로 가닥을 잡았음을 보여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철거를 하는 것일까. 정부 관계자는 조선일보와의 12월28일 인터뷰에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 논란에 대해서는 “일본 내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철거 이야기가 나왔지만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다소 상반된 답을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회담 결과를 놓고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근혜 대통령은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것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밝혔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국 외교장관 간 공동기자회견 전문이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국교정상화 50주년 맞아 서울 방문하고 윤병세 만나서 외교장관회담 개최한 것 기쁘게 생각한다.
일한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 국장급 협의등을 통해 협의해왔다 그 결과 기초해 일본 정부는 이하를 표명한다.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하에 다수 깊은 위안부의 명예 상처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총리대신으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갖고 상처입은 분들에게 마음으로 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
2. 일본 정부는 지금 문제 진지하게 임해왔고 이에 기초해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 하기로 한다.
3. 일본 정부는 이상 말씀 드린 조치 한국정부와 함게 착실시하고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 한다. 일본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
앞서 말씀드린 예산 조치에 대해서 규모로서는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양 정상 지시에 따라 협의한 결과이고 일한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것을 확실하고 있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일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이를 기초해서 한국 정부는 아래와 같이 표명한다.
1.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는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2.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3.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전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
이상으로 한국정부 입장 말씀드렸다. 한일국교정상화 50년 넘기기 전에 기시다 외무상과 그간의 지난했던 협상에 마침표 찍고 선언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근본 협의의 후속조치가 확실히 이행돼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길 바란다.
과거사 현안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마무리되는 계기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길 기원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2/28/story_n_8882818.html?utm_hp_ref=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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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외교? 최선의 결과? 위안부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들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도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은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있고, ‘최선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합의문 안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고, 일치하는 내용도 있다. 이번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교차한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대하는 ‘원칙론’과 ‘현실론’ 중 한국 정부가 ‘현실론’을 택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인식, 역사적 관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 여부 등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과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문제, 국민 여론, 양국관계 등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이 얽힌 대표적인 ‘복잡계’”(경향신문 사설)라는 점이다.
I. 총평
29일자 주요 일간지들 대부분은 ‘한계는 있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국제법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적 요구와 기대를 모두 충족할 최선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한국일보 사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타결 내용은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외교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중앙일보 사설)는 것.
그럼에도 협상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완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불인정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적잖은 수확이 있기에 양국의 노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일본 내 친한 인사들조차 일본의 어느 정권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한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나 시민사회단체, 야당 등은 이번 합의를 ‘굴욕외교’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원칙에 어긋나는 내용을 ‘외교적 해법’이라며 국민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며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바란다면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논리를 펼칠 게 아니라 법적 책임을 흔쾌하게 인정하면 된다. (중략) 아무리 한-일 외교관계가 중요하더라도 문제를 얼버무리는 식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두 나라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언급할 게 아니라 진정한 해법을 위해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일 합의는 50년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억원에 도장찍었던 제1차 굴욕 한일협정에 이은 제2차 굴욕 한일협정이라고 단정한다"며 "부녀가 대를 이어 일본에 두차례나 식민지배 면죄부를 줬다"고 말했다.
II. 합의문 쟁점별 평가
이번 합의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면 엇갈린 시각차가 두드러진다. 기본적으로 합의문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원칙론에 따르자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끌려간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현실론에 비춰보면 일종의 타협을 이룬 결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 법적책임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뒤에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던 단체들은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시인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늘 핵심 쟁점이었다.
역대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책임이 해소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며,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유감의 뜻을 밝혀왔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협정이 맺어진 당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공론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적책임을 인정할 것을 줄곧 일본에 요구해왔다.
이번 합의문에 ‘법적책임’이라는 단어는 명시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가 담겼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전시 일본 정부·군이 위안소 제도를 운영한 사실과 이런 사실이 전시에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반인도적 국가범죄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피해자 할머니와 정대협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식을 회피·우회했다. (한겨레 12월29일)
하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이란 표현 자체는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사이토 쓰요시(齋藤勁) 일본 관방부장관의 물밑 교섭에서 합의됐던 문안이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전직 관리는 "겨우 이 표현을 얻어내려고 3년이나 허비한 거라면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의적’이라는 표현 없이 일본 정부가 책임을 공식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이를 ‘외교적 지혜’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한국 정부는 고노 담화에도 없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한 것을 성과로 보고 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했을 뿐 정부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도의적’ 등의 수식어 없이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 12월29일)
‘사사에 안’이나 아시아여성기금 사업 당시 일본 총리 서한에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언급만 있었다. 외교부는 “책임 앞에 수식어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분명히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우리는 법적 책임이 있다고, 일본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게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아일보 12월29일)
일본의 법적책임 인정은 기존 조약 등 국제법을 고려할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요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의 본질이 식민지 지배 피해 보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산권 정리였고, 한일기본조약에서 한일합병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봉합한 것 모두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이 제14조국(전승국)이 아닌 제4조국(신생독립국)이었던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 따라서 65년 기본조약 체제의 전면 수정,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전면 부정이 아니고서는 외교 협상에서 꺼내어 들 카드이기 어려웠다. (한국일보 사설 12월29일)
2. 배상, 보상
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책임 인정 여부는 일본이 내놓을 돈의 성격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 부분 역시 합의문에 ‘배상’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에서 “보상은 어디까지나 ‘너희가 끝까지 지금 돈 벌러 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조금 준다’는 그게 보상이고, 죄에 대한 책임이 배상이다. 그러니까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정대협은 “그 의무를 슬그머니 피해국 정부에 떠넘기고 손을 떼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한겨레 12월29일)
기시다 외무상은 협상 타결 직후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돈이 “배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배상 문제는 최종 종결됐다는 것)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역시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도 일본 정부의 예산이 일부 투입됐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자금은 민간 모금으로 마련됐고, 일본 정부 예산은 인도적 사업에 쓰였다"며 이번에는 피해자 지원에 일본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 12월28일)
그러나 이번엔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에 일본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이 돈을 제공하기로 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이 돈을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데 대한 사죄의 증거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 사례에 비춰 본다면 분명한 진전이다. (한겨레 12월29일)
동아일보는 재단 설립이 청와대의 아이디어였다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관련 단체도 포용해야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대협 등은 1991년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앞장서 왔다. 하지만 한일 교섭으로 문제가 타결되면 단체들이 존재 의미를 잃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한일은 이 재단을 통해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 사업’을 하고 자금의 성격도 ‘치유금’으로 불러 관련 단체들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동아일보 12월29일)
3. 위안부 성격
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부분 역시 해석이 엇갈린다. 이 역시도 합의문에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만 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군에 관여하에’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점은 일본이 '책임'을 언급하면서 정작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를 누락한 것이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은 '군(軍)의 관여'라고만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국가적·법적 책임이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위안부 강제동원 때문인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며 "일본이 통감한다는 책임이 결국 '도의적'인 차원이란 얘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김성한 교수는 “‘군의 관여’는 곧 법적 책임을,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문구엔 강제성이 내재돼 있다”며 “일본 정부도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인휘 국제학부 교수 역시 “일본이 직접 거론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공감을 표한 것”이라고 봤다. (중앙일보 12월29일)
4. 사과
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참여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단체가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내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성 인정 여부와 함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 수위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합의문에는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타결 직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으로 사죄와 반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베 총리의 ‘극우적 성향’이나 일본 내 보수파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진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아베 총리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사죄를 요구해온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한국일보)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정대협은 합의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대독사과’에 그쳤고 사과의 대상도 너무나 모호해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것.
5.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합의문에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는 대목과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언급이 담겼다.
이 부분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하게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시다 외무상에게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주문했다는 것.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것만 명시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이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정부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에도 나름의 의도를 담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표현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도 해당되는 것”이라며 “일본은 한국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 표현을 넣자고 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본도 말을 바꾸지 마라’는 의미로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12월29일)
그러나 합의문에 이런 내용이 담긴 것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위안부 문제는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팔다리를 묶는 격이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② 그동안 한국이 부적절한 요구를 했다는 뜻인가?
이날 양측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방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전직 외교관 A씨는 "사실상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부적절하게 일본 욕을 하고 다녔다고 인정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③ 정부가 무슨 권리로 못 박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안을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최종’이라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이번 합의가 얼마나 위안부 피해자와 우리 국민, 국제사회 등이 수용할 만한 내용인지 지켜보는 게 올바른 태도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III. 합의 과정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건 합의과정이다. 이 부분에서는 정부가 썩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일단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며 강경 정책을 펼쳤다. 이런 ‘강경외교’는 지난해 가을에서야 변화 움직임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서는 완전히 반대 움직임으로 돌아섰다.
정상원 한국일보 기자는 “정부의 대일 정책이 급변하는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원죄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취임 초부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공박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해왔던 데서 출발한다. 우리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에는 전혀 굽히지 않은 채 미일·중일관계를 강화했고, 결국 다급해진 정부는 대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1월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관계 개선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결과적으로는 2년 반 동안 대일 강공외교는 소득 없는 빈 깡통이었다는 비판만 떠안게 됐다. (한국일보 12월29일)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먼저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 종합한 뒤 그것을 기초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부 간 합의를 한 뒤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간 협상이고 보안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정부가 애초 의견수렴과 설득을 병행해야 했다. (경향신문 사설 12월29일)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를 방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하기에 앞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중요한 것은 피해 할머니들”이라며 “합의 내용에 대해 최대한 세심한 설명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해 협상 절차와 결과를 직접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 타결 직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하게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해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당부했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외교부 1차관과 2차관은 각각 정대협 쉼터와 나눔의집을 방문해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를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를 만나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두 할머니와 함께 쉼터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차관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이랑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호통을 쳤다. (연합뉴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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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3년차인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 3년차인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과 닮았다. 국민 특히 피해자의 목소리가 무시됐고,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공동의 합의문을 만들지 않아 각국 정부와 언론의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해당 합의로 문제를 덮는 효과도 비슷하다.
지난 28일 양국의 합의내용은 △‘위안부’ 문제에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총리 사과 표명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일본정부가 자금을 내고 이후 양국이 협력해 사업을 한다는 것 등 세 가지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한국과 일본 간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부속 협정 4가지)과 비교해보자.
국민·피해자 목소리 외면 “최종적으로 해결”
1961년부터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진행한 한일협상 내용이 알려지자 1964년부터 국내에서는 한일회담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김 전 부장은 “제2의 이완용”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내 3억달러를 받으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를 끝냈다. 지난 28일 외교장관회담 결과가 나오자 비판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번 합의는 1965년 합일협정과 사실상 똑같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1965년 한국이 발표한 합의문에서 양국이 피해자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것과 닮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하겠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피해자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것은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고 교육사업, 즉 위안부 문제를 삭제했던 일본 교과서에 이를 다시 실어서 가르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합의문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일본정부의 심기 건드리지 않기 “배상 아니다”
김 연구원은 “합의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민간이 아닌) 국가 간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것도 전적으로 일본 쪽 의견을 들어준 것”이라며 “명백하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외교장관은 “(양국)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 발표했다.
▲ 1962년 10월 오히라 일본외상과 회담하고 있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 | ||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에도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1960년 일본 극비문서에는 회담 이전부터 과거에 대한 보상없이 경제기술협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 담겨있다. 일본은 결국 ‘독립축하금’ 3억달러를 한국 정부에 지급했다.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위해서는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해야 한다.
지난 28일 기시다 일본 외상은 “배상이 아니”라며 “도의적 책임이라는데 변함이 없으며 법적 책임은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은 “(일제에 의한) 피해자문제, 반인도적 범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를 뒤집으며 일본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1965년 당시 피해자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정부가 한국에 3억달러를 주면 국내에서 개인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1993년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기록을 한국에 보내 60년대 당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방식도 비슷하다.
합의문에 따르면 일본이 10억엔을 내면 한국이 재단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 해결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김민철 연구원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며 “이미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 창설했을 때도 피해자들이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서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시민모금 6억엔, 정부 자금 48억엔을 냈지만 피해자들은 거부했다.
공동합의문 없어 제멋대로 해석
1965년 한일협정은 공동합의문이 없었고 한일정부가 각각 기자회견을 통해 각 국민에게 소식을 전했다. 한국정부는 당시 강제징용피해자의 미지불임금, 사망자 부상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 앞으로 이를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는 항목(청구권 8항목)을 빠뜨린 채 발표했다. 일본은 현재까지 이 항목을 근거로 개인청구권을 부정하고 있다.
▲ 윤병세(왼쪽)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위무상이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 ||
지난 28일 역시 공동합의문 없이 각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문을 전했다.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에게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를 조양호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 국고에서 나온 10억엔으로 피해자 지원이 이뤄지는 건 사실상 법적 책임을 수용했다”고 해석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녀상’ 철거 문제는 일본 측 발표에는 없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표에만 등장한다. 한국 측 합의문에는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및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며 “관련단체와 협의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민철 연구원은 “이는 한국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이미 협상전인 지난 26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도록 관련 시민단체를 설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터무니없는 언론플레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합의문에는 ‘소녀상’ 철거가 언급돼 있다. 한국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한일협정, 군사협력을 위한 위안부협상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위안부문제 협상은 모두 양국 정부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962년 7월 주일 미대사관에 발송한 미국무성 전문을 보면 “한국정부 최고위층을 접촉해 청구권 문제를 청구권을 강조하지 않고 하나의 패키지(일괄타결)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라”며 “추가적인 압력이 필요하다면 미국의 개발차관 공여가 협상타결과 관련됐다고 말하라”고 돼 있다.
해당 문서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일협정이 필요하고 금액의 성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액수가 중요한 것이라는 미국의 뜻이 담겨있다. 실제 박정희 정권은 이 자금 중 7370만달러로 1973년 포항제철, 280만 달러로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도 미국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김민철 연구원은 “위안부 자체의 문제보다 한일군사보호협정 등 군사동맹 강화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 안으로 한국이 들어와야 하는데 위안부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었으니까 ‘불편하다’, ‘빨리 해결해라’ 이런 요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사진=포커스뉴스 | ||
지난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여론의 반발로 유보됐다. 일본측이 제기한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논의가 막히자 지난해 12월 국방부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을 추진했다. 한일 군사동맹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개입, 주도권은 누구에게
29일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 사실상 협상 지휘, 미국 끌어들여 아베 압박”이란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의 말을 통해 “평소 정책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을 감안하면 협상을 박 대통령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부 인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본을 압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민철 연구원은 “한국이 미국을 동원했는지 미국에게 압력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개입돼 있다는 것”이라며 “협상 다음단계가 미국 주도하의 삼각동맹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국제정치적 논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8일 특별성명을 통해 “한일 양국 위안부 문제 합의에 환영한다”는 뜻을 전했다.
외교적 합의는 쉽게 깨기 어려운 약속이며 주변국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효과까지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은 족쇄가 됐다.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65년)한일협정보다 나은 조건으로 북한과 협상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결국 2002년 김정일-고이즈미 북일정상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명시했지만 위안부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한 ‘반쪽’짜리 공동선언을 가져왔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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