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돌(지석묘; 支石墓, dolmen)
지석묘(支石墓)라고도 부른다.
북유럽·서유럽·지중해 연안·북아프리카·서남아시아 일대의 신석기시대 묘제로 분포하나, 한국의 고인돌과 직접적인 문화적 관계는 없는 듯하다. 중국 랴오닝성과 산둥반도 및 일본 규슈[九州]에도 분포하나, 한국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미미하다.
고인돌은 크게 나눠 지상에 4면을 판석으로 막아 묘실을 설치한 뒤 그 위에 상석을 올린 형식과, 지하에 묘실을 만들어 그 위에 상석을 놓고 돌을 괴는 형식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대체로 한반도 중부 이북 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후자는 중부 이남 지방에서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이들을 각각 북방식 고인돌과 남방식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이밖에도 지하에 묘실을 만들었으나 남방식 고인돌과는 달리 돌을 괴지 않고 묘실 위에 상석을 바로 올린 고인돌도 있는데, 이를 개석식 혹은 변형 고인돌이라고 한다.
세계문화유산 "고인돌("Dolmens" The World Cultural Heritage)
# 고인돌 제작
고인돌의 연구에서는 지하의 묘실 구조와 축조방법을 중시하는데, 연구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이렇게 북방식·남방식·개석식 등의 3종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북한 학계는 고인돌에는 한 구역 안에 2~3기의 고인돌을 나란히 세우고 상석 높이까지 돌을 덮어 묘역을 구성한 형식의 고인돌과, 전형적인 북방식 고인돌의 두 유형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을 각각 침촌리형과 오덕형 고인돌로 부르며 전자가 시기적으로 더 이르다고 본다.
고인돌 각 형식 간의 시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크게 북방식이 앞선다는 설과 남방식이 앞선다는 설이 있으나, 시간적 관계 판단에 필요한 유물이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확실하게 단언하기 힘들다. 고인돌이 만들어진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 의견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
혹자는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치를 근거로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인돌이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 기원전 8~7세기 이전에 시작되었다거나, 아무리 이르게 보아도 기원전 5세기를 넘을 수 없다는 주장 등을 하여 이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인돌이 마지막으로 사용된 시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초기 철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인 움무덤[土壙墓]이 등장하기 이전인 기원전 2세기경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편, 고인돌이 만들어진 문화적 연원에 대해서도 역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데, 지하에 설치된 돌널무덤[石棺墓]이 지상화되어 고인돌로 발전하였다는 자생설, 만주지방에 분포한 대석붕(大石棚)의 영향을 받아 발생하였다는 설, 남아시아의 거석문화(巨石文化)의 유입으로 발생하였다는 설 등이 있다.
고인돌 경우도 있다. 북방식 고인돌은 한강 이남 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전라북도 고창에서 발견된 북방식 고인돌이 최남단의 것이다. 남방식 고인돌은 전라도 지방에 밀집 분포하며, 경상도와 충청도 등 한강 이남 지역에서도 많이 보인다. 한편, 개석식(蓋石式)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일본 규슈[九州]지방에 분포하는 고인돌은 조몬[繩文]시대 말기에서 야요이[邇生]시대 초기에 걸쳐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한국계 유물과 함께 발견되고 있어, 일본 야요이문화가 한국에서 건너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음을 암시한다. 고인돌에서는 간돌검과 돌화살촉이 주요 부장품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민무늬토기와 붉은간그릇 등 토기류와 청동기가 부장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많은 고인돌에서는 유물이 전혀 없거나 있어도 매우 미미해, 고인돌이 세골장(洗骨葬) 혹은 이차장(二次葬)용의 무덤일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다. 또한 고인돌 축조에 필요한 거대한 돌의 운반에는 대규모의 인력이 필요로 하였을 것이라는 가정에서, 이것이 족장(族長) 등 지배계급들의 묘(墓)라는 주장도 있다.
- 은 제주도를 포함하여 전국에 분포하나, 황해도·전라도에 가장 밀집되어 있으며 한 곳에 수백 기의 고인돌이 군을 이루어 분포한다
# 고인돌 형태와 구조
고창 화순 강화 고인돌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대한민국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전라북도 고창군·전라남도 화순군· 인천광역시 강화군 3개 지역에 나뉘어 위치해 있는 고인돌군(群)이다.
개요
고창은 2000년 지정 당시 고창읍 죽림리 및 도산리와 아산면 상갑리 및 봉덕리 일대 고인돌 등 447기, 화순고인돌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 고인돌 596기, 강화고인돌은 하점면 부근리고인돌 등의 7며, 강화고인돌은 형식이나 분포 위치 등에서 연구할 만한 가치가 높아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 왔다.
고창 고인돌 유적
고창읍 죽림리 매산마을을 중심으로 죽림리, 봉덕리, 상갑리 일대에 동서로 약 1,764m 범위에 447기가 분포해 있다. 죽림리 고인돌은 해발 15~65m의 등고선을 따라 일정한 높이에 442기가 자리잡고 있으며, 도산리 지동마을에도 고인돌 5기가 남아 있다.
고창 고인돌 유적은 1990년에 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으며 행정구역에 따라 상갑리·봉덕리, 죽림리, 도산리 3개 지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 내에 모여 있는 상태에 따라 상갑리,봉덕리는 4개 지구, 죽림리는 6개 지구로 구분된다. 고창 고인돌의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서 440여기가 밀집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인돌의 형식은 탁자식·기반식·개석식과, 탁자식의 변형이라 할 수 있는 지상석곽형 등 다양한 형식이 있으며 채석장 유적도 발견되었다. 무덤방 안에서 부장 유물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 고창지석묘군(사적 제391호)
- 도산리지석묘(전라북도기념물 제49호)
화순 고인돌유적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 일대의 계곡을 따라 약 10㎞에 걸쳐 596기(효산리 277기, 대신리 319기)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으며 고인돌에 쓰이는 돌을 캐기 위한 채석장도 발견되었다.
대신리에는 해발 65~125m, 효산리에는 해발 45~90m에 분포하고 있어 일반적인 고인돌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숲속에 자리 잡고 있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화순 고인돌 유적은 사적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좁은 지역 안에 고인돌이 밀집분포하고 있고, 100톤 이상의 대형 고인돌 수십 기가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의 축조과정을 보여주는 채석장이 발견되어 당시의 석재를 다루는 기술과 축조방법을 확인할 수 있다.
- 화순 효산리 및 대신리 지석묘군(사적 제410호)
강화 고인돌유적
강화 부근리, 삼거리, 오상리 등의 지역에 고려산 기슭을 따라 120여 기의 고인돌들이 분포해 있다. 표고 280m의 높은 곳까지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탁자식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화순·고창 고인돌과 달리 여러 지역에 흩어져 분포하고 있다.
- 강화지석묘(사적 제137호)
- 내가지석묘(인천광역시기념물 제16호)
- 강화 대산리고인돌(인천광역시기념물 제31호)
- 강화 부근리점골지석묘(인천광역시기념물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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