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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사소한 생각

오세훈(거품 비주얼 정치인)==>>약력 & 정치활동 & 부활?



출생1961년 1월 4일 (52세)
대한민국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동구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학력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 박사
직업법조인, 교육자, 방송인, 정치인, 공무원
종교로마 가톨릭(세례명: 스테파노)
배우자송현옥
자녀2녀
친척여동생 오세현





오세훈(吳世勳, 1961년 1월 4일 ~ )은 대한민국의 변호사, 방송인, 시민운동가 출신 정치인으로 제16대 국회의원, 제33·34대 서울특별시장을 역임했다.


학창 시절


오세훈은 1961년 1월 4일 서울 성수동에서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답십리동, 삼양동, 부산광역시로 전학다니다 서울 미동초등학교 중동중학교를 졸업했다.[1] 오세훈은 이 당시 '산꼭대기 동네에 살면서 호롱불 켜고 우물물 길러 다니면서 학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운 집안 형편이었으며, "숙제는 해가 지기 전에 미리 끝내고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라고 회고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부인 송현옥의 오빠와 한 반이 되었고 그 인연으로 그의 여동생인 송현옥과 만났다. 그 뒤 송현옥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대학 커플로 이어지고 후에 결혼하게 된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한 뒤 2학년때 고려대학교로 편입을 하여 대학 생활을 이어간다.



사법시험 합격과 군 복무, 대학원 생활


1980년대 초반 사법시험 준비에 매진한 끝에 1984년 제26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 그 뒤 사법연수원에 17기로 입소하여 수료하고 육군에 입대했다. 고시 합격생 장교 임용에 따라 그는 육군 소위로 임관되었다. 당시 오세훈은 법무장교로 지원했으나 합격성적이 낮아 법무관이 못되어 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정보처(2처)에 전속되어 정훈장교로 복무하였다.

예편 이후 고려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여 상법을 전공하여 1990년 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변호사를 개업했고, 동 대학의 박사과정에 진학하여 1999년 법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


변호사, 교육자 시절


변호사 개업 후에 1991년 부평 모 아파트에서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너무 좁아 대낮에도 형광등을 켜야 할 정도로 일조권 침해를 받았다며 소송을 제기, 건설사로부터 13억원의 손해배상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최열 대표와 환경운동연합의 창립멤버로 참여했고, MBC에서 방영한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에도 배금자 변호사와 함께 출연했다. 1992년 2월 환경운동연합 시민상담실 실장이 되었다.

1996년 5월에는 시사저널 지 편집자문위원에 위촉된 뒤, 10월에는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행자로 발탁되었다. 그리하여 1996년부터 1997년 9월, 다시 문성근씨가 그것이 알고싶다 진행자로 복귀하기 전까지 1년간 sbs 다큐멘터리 그것이 알고싶다의 진행자를 맡게 됐다. 이 기간 중 이권단체들로부터 회유와 협박을 받았지만 굴복하지 않고 방송을 진행해 나갔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환경운동연합 법률위원회 위원장 겸 상임집행위원을 지냈다. 변호사 활동을 하며 1997년 9월부터 1998년 2월까지 숙명여대 법학과에서 민사소송법의 겸임 교수로 일했고, 1998년 1월부터 1998년 12월까지는 미국 예일 대학교에서 Law School Visiting Scholar로 있었다.


1995년 대한변호사협회 환경문제연구위원회 의원을 역임했고, 1999년 이장호, 김기수와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개업했으며 1999년 3월 다시 숙명여자대학교 법학과 민사소송법 겸임교수로 위촉되었다.



# 정치활동



국회의원 오세훈은 4년 연속 시민단체 주관 국정감사 우수위원(2000~2003)으로 선정되었고, 임기 말에는 ‘5,6공 용퇴론’을 주장하며 한나라당의 인적 쇄신을 요구했으며, 지구당위원장직 사퇴에 이어 2004년 1월 6일 “정치개혁과 한나라당의 공천혁명에 밑거름이 되려한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까지 선언하여 기득권 포기를 실천에 옮겼다. 그 후 정치자금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을 주도하며, 깨끗하고 투명한 선거를 위한 소위 ‘오세훈선거법’을 남김으로써 ‘공천 물갈이’에 이은 ‘법 개정’으로 정치개혁에 마침표를 찍었다.


2006년 ~ 2011년 서울시장 재임시절, 오세훈 시장은 창의시정 디자인 서울을 주요 정책으로 주창하면서 청렴도 향상, 강남북 균형발전, 서울형 복지정책, 대기환경 개선, 장기전세주택 '시프트' 건립 등에 주력하였다. 특히 120다산콜센타는 서울시민의 민원소통창구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득구분없이 전면 무상급식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입장에 맞서, 재정 건전성을 고려하여 소득계층 하위 50%까지 선택적·점진적 무상급식을 주장한 오세훈 시장은, 결국 주민투표에서 최종투표율 25.7%로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는 투표율 33.3%를 달성하지 못해 서울시장직을 사퇴했다.





#. 2013.11.08



세미나 발제자로 나선 오세훈 전 시장




【서울=뉴시스】전신 기자 = 

8일 오전 서울 중구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 열린 137회 금요정책세미나 '서울시 민선 4-5기의 비전 체계' 발제자로 나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201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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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견






한국대표적인 비주얼 거품정치인 .

자기자신 욕망을 위해 모든 공익을 일순간에 던져 버리는 유형

모든일이 지나고나면 자기자신을 위한것. 

돈과관련되어있어 , 후대에 골칫거리 안겨주는유형


이명박에서 진화된스타일(비주얼,언변) ,,하지만 근본적인것은 같다


서서히 정치를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에게 무서운 불행을 안겨주려고 하고있다

이명박 경험으로 충분하다..

더이상은 조작된 신화에 속지말아야한다


망각이라는 틈새를이용 다시한번 욕망을 불태우려고하고있다

공익을 희생하여!!




"선의 방관은 악의 승리를 꽃피운다"

(에드먼드 버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