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
1993년 12월 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의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다.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시점에 물웅덩이에서 발견된 것이다.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대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로 진흙에 잠긴 진공 상태에서 보관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1995년의 발굴 조사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발견된 사리감에서 "백제 창왕 13년 (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이 점에 주목하여 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의식용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
구성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2.5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잇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과 향로 뚜껑은 하나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어, 제작 과정에서 세 개의 주물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늬,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가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갖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
금동대향로의 세계
중국에 서역의 향품이 전해져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쫓기 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불교문화연구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의 연화화생설과 관련있다고 하는데, 불교의 이상향인 연화장의 세계는 비로자나불이 있는 광대하고 장엄한 이상세계를 말한다.
연화장 세계의 맨 아래에는 풍륜이 있고, 풍륜 위에는 향수해가 있어 그 향수해에 큰 연꽃이 핀 것을 연화장이라 하는 이상세계이다. 즉, 대향로를 받치고 있는 용은 향수해를 의미하고 연꽃잎 위의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설명이다.
봉황을 고대 동북아에서 신성시해 온 천계(天界)로 보고, 5악사와 기러기를 백제의 5부로 보아
백제대향로에 고대 동북아의 전통사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설도 있다.
[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20주년 ]
1400년 긴 잠 깨어난 백제 금동대항로 출토는 ‘한편의 드라마’
20년 전 12월의 어느 겨울, 자그마한 촌동네였던 충남 부여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당시 동네토박이였던 60대 할아버지는 아마도 부여군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외지인이 온 것 같다고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천, 수만 명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10㎏이 조금 넘는 향로 하나였다. 새 하얀 눈에 뒤덮여 있었던 부여 능산리 고분군과 백제 나성 사이에 있는 논바닥 그리고 물기를 촉촉이 머금고 있었던 자그마한 웅덩이. 그 속에서 백제를 깨우는 세기의 유물이 1400년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197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공주 무령왕릉의 발굴에 이어 정확히 22년 만에 등장한 백제금동대향로는 우연히, 극적으로 백제인의 후예에게 다가왔다.
역사학자들에게 백제의 역사는 무령왕릉과 금동대향로 발굴 이전과 후로 나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348년 전인 의자왕 즉위 20년, 백제는 나·당 연합군에게 처참하게 패배한 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궁궐과 절, 성곽 등 땅 위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소실돼 버렸고, 기록 문화 역시 제대로 남아있는 게 없었다.
패망의 역사로만 그려져 왔던 백제는 백제금동대향로 발굴로 인해 대백제 부활의 신호탄을 올렸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가 세상에 빛을 보면서 사비 시기에 화려하게 꽃핀 금속 공예 문화가 존재하였음을 확인하게 됐다. 부여 능산리 절터 공방지에서 발굴된 대향로는 화려하고 섬세한 디자인은 물론 측면에서 당대 최고의 제작기술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백제금동대향로의 5악사는 대향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요한 소재이다. 5악사와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백제가 동북아시아의 중심에 서서 교류문화를 이끌어 나갔다는 증거가 되며, 우리 고대 음악 연구에 커다란 줄기가 되기도 한다.
백제금동대향로는 5명의 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5개의 봉우리 등으로 구성됨으로써 백제 고유의 5부 체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향이 피어오르는 구멍이 앞·뒤로 각각 5개씩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고, 5개의 음(音)을 안다는 봉황에 이르기까지 향로 속 주요 조형물들은 숫자 '5'와 많은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5부 체제는 백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세계관이었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가 5부체제를 봉황과 5악사, 기러기의 가무형태로 표현한 것은 백제인들의 정치적인 이상이 하늘의 질서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신을 맞아 함께 제례를 지내며 가무를 하는 동안 왕과 신 그리고 귀족과 백성 모두 하나가 된다. 즉 백제금동대향로는 하늘을 향해 피우는 향훈(香薰) 속에서 신과 인간, 왕과 백성, 귀족과 평민이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을 제시하는 것이다. 백제시대는 국제성과 평등성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세계였다. 이렇듯 우리는 1400년 전 백제의 모습을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찾고 또 그 속에서 배우고 있다.
②향로 대해부
◇향로의 전체적인 모습=향로는 전체적으로 뚜껑과 몸체 두 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세부적으로는 뚜껑 장식인 꼭지, 뚜껑, 몸통, 받침 등 네 부분으로 나누어지며 각각 따로 주조돼 결합됐다.
꼭지의 정상에는 한 마리의 봉황이 턱밑에 여의주를 끼고 날개를 활짝 펴서 힘차게 날아오르는 자세로 서 있다. 봉황은 동아시아의 박산을 포함한 상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문헌 등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신조(神鳥). 향로의 가장 윗부분에 당당히 위치한 봉황은 깃털, 벼슬, 부리, 꼬리뿐 아니라 발가락까지도 자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중첩된 산의 모습을 하고 있는 뚜껑은 옆으로 돌아가며 4-5단의 41곳의 능선을 가진 산과 33곳의 삼산형의 봉우리로 장식됐다. 이 곳에 16명의 인물상과 39마리의 동물들이 곳곳에 위치해 생동감을 준다.
그 뚜껑의 제일 윗단에는 피리, 비파, 배소, 현금, 북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들이 감미로운 표정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머리 우측에 머리카락을 묶어 내려뜨리고 있는 모습으로 향로 위에 정좌한 채 앉아 향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주악상 아래에는 5개의 산이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고 그 산꼭대기에는 기러기 모양을 한 원앙새가 음악에 맞춰 노래부르거나 하늘로 오르려는 모습으로 묘사됐다. 산봉우리 곳곳마다 나무와 바위, 산길과 시냇물, 입체적으로 돌출돼 낙하하는 폭포의 물줄기, 잔잔한 물결의 파동이 그대로 전해지는 호수가 펼쳐진다. 여기에 동물들의 모습은 다양하다 못해 이채롭기까지 하다. 동물들은 현실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호랑이, 사자, 사슴, 원숭이, 멧돼지는 물론 봉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과 길짐승 등도 함께 표현돼 있어 중국의 신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뚜껑 아랫부분인 몸통은 연꽃잎이 8개씩 총 3단으로 되어있고 각 연꽃잎의 중앙과 연꽃잎 사이사이에 인물상과 사슴, 학, 물고기 등으로 추정되는 각양각색의 동물상 26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기에서 몇몇 동물들은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종류와 이름을 밝혀지지 않고 있다.
가장 밑부분인 받침은 한 마리의 용이 우주의 기운을 받들고 힘차게 승천하려는 모양을 하고 있다. 세 개의 다리는 바닥을 딛고 있어 안정감을 주고 다리 하나는 위로 치켜 올린 채 목을 곧추세우고 향로의 몸체를 이루는 연꽃의 줄기를 입으로 문 채 떠받들고 있다. 용의 머리와 뿔, 다리, 비늘 등의 모습이 세심하고 생동감 있게 표현됐다.
◇향로속 담긴 숫자 '5'의 의미=백제금동대향로는 5명의 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5개의 봉우리 등으로 구성됨으로써 백제 고유의 5부 체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여기에 향이 피어오르는 구멍이 앞·뒤로 각각 5개씩 이중으로 둘러쳐져 있고, 5개의 음(音)을 안다는 봉황에 이르기까지 향로 속 주요 조형물들은 숫자 '5'와 많은 연관성을 내포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속 5부 체제는 백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이념이자 세계관이었다.
◇백제의 5부 체제=고대국가는 각 나라마다 고유한 성수체계를 갖고 있어 각종 상징물의 조형원리 등으로 삼았다. 백제의 경우 행정기구였던 5부(部)와 5방(方), 대표하는 조형물인 정림사지 5층석탑 등으로 볼 때 성수 '5'의 체계에 든다.
5부 체제는 5부족의 초기형태라고 볼 수 있다. 5부족은 부족들의 대표가 모여 국사를 결정하는 회의제 성격을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구려의 제가회의, 신라의 화백회의이다. 백제는 3세기 고이왕 때 왕을 중심으로 행정기구의 성격이 강화된 남당제도(南堂制度)가 실시됐다. 이는 각 부족의 대표들이 모여 대소사를 논의하던 전통이 기반이 돼 발전된 것.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중심으로 한 5부체체의 상징물들은 고대 정치의 이상을 반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백성을 상징하는 기러기='9월에 기러기 100여마리가 날아들었다. 일관(日官)이 말하기를 "기러기는 백성의 상징이니 장차 먼 곳의 백성이 귀의해 올 것입니다"고 하였다. 과연 10월에 남옥저의 구안해 등 20여 가문이 부양에 이르러 귀의하니, 왕이 이를 받아들여 한산 서쪽에 거주하게 하였다.' '백제본기'의 온조왕 43년조에는 백성의 상징이 기러기임을 실제로 말하고 있다. 고향을 떠나 남하한 백성들의 고단한 삶을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의 삶에 덧대어 말한 것. 백제금동대향로 속에는 비상하려는 듯 날개를 활짝 핀 모습 날개를 완전히 접은 모습, 등 모두 다른 자세로 조형돼 있는 기러기는 5악사의 연주에 맞춰 춤이라도 추듯 가무상으로 그려진다. 백제금동대향로 속의 5마리의 기러기들도 백제인, 즉 백성을 나타내고 있다.
◇백제 귀족을 상징하는 5악사=왕을 상징하는 봉황 그리고 백성을 상징하는 기러기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5악사 모두 5부 체제를 표방하는 하나의 상징물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외형상 악기 연주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5부 체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5부 귀족 또는 5부족을 상징할 가능성이 큰 것. 5악사는 머리를 오른쪽으로 내려뜨리는 독특한 머리장식, 산악도 속 다른 인물들과는 다르게 옷을 갖춰 입고 있는 모습 등은 이들이 귀족임을 대변해준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을 중심으로 한 5악사와 5마리의 기러기 등의 상징체계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음악과 정치의 상관관계이다. 고대에는 제천의식이나 왕의 행차에는 물론 전쟁이나 수렵활동을 할 때에도 음악을 연주했다. 이는 '소리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고대 정치의 이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따라서 백제금동대향로가 5부체제를 봉황과 5악사, 기러기의 가무형태로 표현한 것은 백제인들의 정치적인 이상이 하늘의 질서에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천신을 맞아 함께 제례를 지내며 가무를 하는 동안 왕과 신 그리고 귀족과 백성들 모두 하나가 된다. 즉 백제금동대향로는 하늘을 향해 피우는 향훈(香薰)속에서 신과 인간, 왕과 백성, 귀족과 평민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1400년 전 백제시대는 국제성과 평등성이 공존하는 이상적인 세계였던 것이다. 최신웅 기자
③문화콘텐츠
문화콘텐츠로서의 금동대향로
◇문화콘텐츠로서의 향로=20년 전 부여 능산리 유적지에서 극적으로 발굴된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사 뿐만 아니라 한국 고대문화사에 한 획을 긋는 유물이 됐다. 학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도 백제금동대향로와 조우하기 위해 전국에서 국립부여박물관을 찾고 있고 일본, 중국 등 해외에서도 세기의 유물을 직접 보기 위해 비행기와 배를 타고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백제금동대향로와 한 번 만이라도 마주 보게 된다면 그 위용 넘치는 모습과 섬세한 금속공예 솜씨에 동양을 넘은 세계 최고의 유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21세기는 누가 뭐라 해도 문화콘텐츠 시대이다. 미키마우스, 건담, 뽀로로 등 우리에게 친숙한 문화콘텐츠는 각종 상품으로 개발돼 한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자 얼굴로 전 세계 곳곳에 퍼져 나간다.
문화콘텐츠 개발은 경제적인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물론 나라의 문화·예술 등을 알리는데 최고의 상품이자 관광에 이은 '제2의 굴뚝 없는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700년 백제문화의 정수인 백제금동대향로 역시 문화콘텐츠다운 요소가 충분하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피리, 북 등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된 하나의 소우주이자 문화·예술, 종교, 외교 등 백제시대 문화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를 이용한 문화콘텐츠의 개발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이훈 연구실장은 "백제금동대향로는 원형 자체로 문화상품이 될 수 있고, 각 소재는 다양한 이야기와 문화상품으로 개발 가능성이 충분하다"라며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난 주제를 형상화해 테마공간으로 만들거나, 전체 구성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 영화나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충분한 가능성과 대안=5년 전 공주 수촌리 유적지에서 발굴된 부러진 형태의 관옥은 백제시대의 유물이 문화콘텐츠로 개발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당시 수촌리 유적 4호분과 5호분에서는 부러진 형태의 관옥이 각각 1점씩 발굴됐고, 우연히 두 관옥을 맞춰보니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게됐다. 학자들은 두 무덤이 부부묘로 추정되는 만큼 아마도 부부가 저승에서 다시 만날 것을 희망하며 신표로 갖고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동관 등 최상급 유물이 부장된 이 무덤은 최고 지배자의 무덤으로 백제시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의 소재가 되기에 충분하다.
얼마전 무령왕릉 출토유물이 다양한 문양으로 개발돼 넥타이, 의상 등에 차용됐듯이 백제금동대향로도 얼마든지 문화콘텐츠로의 소재가 된다는 것.
허강 교수는 "백제금동대향로 등 백제시대 유물이나 역사는 문화복원을 통해 콘텐츠를 체계화시키고 이는 웹사이트로 제작해 인터넷을 통해 보급, 누구나 검색하여 백제인의 생활문화상에 대한 정보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라며 "문화콘텐츠는 휴대전화 속 모바일 배경화면, 모바일 캐릭터, 그림메시지 등의 배경으로 활용할 수 있으며, 원형 그대로의 인형 상품, 열쇠고리나 장식품의 일부분으로서의 활용, 문구 및 팬시 상품의 캐릭터로 활용, 한국 토속품으로 관광기념상품으로 제작 판매 등 다양한 형태로의 상품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백제금동대향로의 서사적인 구조와 함께 백제사를 융합해 노래, 시, 소설, 뮤지컬, 연극, 영화 등으로 제작되기 위한 스토리텔링 개발 또한 중요하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각종 인물·동물·자연 등은 미술학적으로, 불교·도교 등의 종교적으로, 공예기술과 제작기법은 과학적으로 대표돼 그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추출해 볼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각 소재는 이야기와 문화상품으로서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이훈 연구실장은 "백제금동대향로의 바다, 육지, 하늘 등의 배경에 백제의 역사적 사실을 접목시켜 재미있게 퓨전식으로 개발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며 "백제금동대향로의 전체 구성을 하나의 스토리로 엮거나 백제사를 백제금동대향로에 적용하여 백제의 탄생부터 멸망까지 담는 등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학자들은 백제금동대향로의 스토리텔링 개발은 백제문화제 등 지역 문화축제와 관광자원으로도 연계 활용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문화콘텐츠의 개발이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2, 제3차 개발을 통해 발전시키고, 활용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립부여박물관 관계자는 "백제금동대향로 등 백제유물의 산업적인 활용은 한국의 우수한 문화유산을 국민에게는 물론 세계인에게 홍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금동대향로가 문화콘텐츠로 개발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적, 조형적인 면에서 심층적인 연구가 보다 필요하며, 그에 따른 다양하고 충분한 물적·인적 지원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순발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는 백제금동대향로를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백제가 소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서기 663년 이후 이 땅에 백제의 백성은 없어졌지만 사람들의 일상은 여전했을 것이다. 백제라는 한 나라의 운명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었던 그들의 삶은 지금 우리에게도 닿아 있다.
마치 오래 사는 나무의 속심처럼 해마다 자라는 현재의 부름켜를 단단히 지탱해주고 있다"라며 "백제는 지금의 서울·경기·충청·전라지역을 토대로 꽃피웠던 우리 고대 삼국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백제에 대한 관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도 물론 소중하지만 지금까지 지속되는 한민족 문화의 고유한 원형들이 대부분 형성되던 때가 바로 삼국시대이기에 더욱 그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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