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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문화사 &시사

정림사지 ===>>>> 정림사지 5층석탑

정림사지




 
정림사는 백제시대의 사찰임이 틀림없는 것 같다. 1980년의 발굴조사를 통하여 금당지(金堂址), 중문지(中門址), 강당지(講堂址), 회랑지(廻廊址)등이 확인되었고 또한 석탑 기초의 판축기법(版築技法), 다량의 와당과 격목와(格木瓦) 등이 발견되므로 해서 백제시대의 창건임이 분명하게 되었다.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시기(538-660)의 중심 사찰이 있던 자리다. 발굴조사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조각 중ꡐ태평 8년 무진 정림사 대장당초(太平八年 戊辰 定林寺 大藏唐草)ꡑ라는 글이 발견되었다.
태평팔년은 요(遼)의 연호(年號)이며 고려 현종 19년(1028년)에 해당된다. 이 문자와의 발견수는 이곳에서 출토된 고려 기와중에 가장 수량이 많았으며 고려 재건시의 정림사를 대표할 수 있는 유물이다.
 
가람배치형식(伽藍配置形式)을 보면 전형적인 일탑식배치(一塔式配置)로 남으로부터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의 순서로 일직선상(一直線上)에 세워졌으며 주위(周圍)를 회랑(廻廊)으로 구획(區劃)하였다.

그러나 특이하게 가람 중심부를 둘러싼 복도의 형태가 정사각형이 아닌, 북쪽의 간격이 넓은 사다리꼴 평면으로 되어있다.
 

발굴조사에서 드러난 절앞의 연못이 정비되어 있고, 석불좌상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은 1933년에 지어졌다.

백제 때에 세워진 5층석탑(국보 제9호)과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 있다.
 출토유물로는 백제와 고려시대의 장식기와를 비롯하여 백제 벼루, 토기와 흙으로 빚은 불상들이 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扶餘定林寺址五層石塔)은 백제시대의 대표적 석탑으로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소재하고 있으며 국보 제9호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졌고 높이는 8.33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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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림사는 사비의 시내 한가운데 있던 중요한 절이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기단은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돌을 끼웠고 탑신부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세워 놓았다.


 좁고 얕은 1단의 기단과 배흘림기법의 기둥 표현, 얇고 넓은 지붕돌의 형태는 목조건물의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단순한 모방이 아닌 세련되고 창의적인 조형을 보여주며, 전체의 형태가 매우 장중하고 세련되었다.

익산(益山)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과 함께 2개만 남아 있는 백제시대의 석탑이라는 점에서도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며한국 석탑의 시조(始祖)라 할 수 있다.

 

탑 각부의 특이한 양식은 한국 석탑 양식의 계보를 정립하는 데 매우 중요하며,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된 백제 석탑의 형식을 정비한 이 탑 이후 백제 석탑의 형식은 다소의 세부 변화는 있었으나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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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림사지박물관

      www.jeongnimsaji.or.kr/ - 저장된 페이지
      정림사지 · 공지사항 · 박물관소개 · 부여군 문화재보존센터. 한국어. ENGLISH. 日本語. 백제인의 꿈과 땀이 밴 역사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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