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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문화사 &시사

논어==>>개설 & 구성 & 역사 & 내용 & 영향

                                          

                                    《논어》(論語)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의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타의 경전들과는 달리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듯한 성격을 띤다.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 제자들에게 전해준 가르침을 '어'라고 부른다.



구성


현재 논어는 전20편, 482장,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서술방식과 호칭의 차이 등을 기준으로 앞의 열 편을 상론(上論), 뒤의 열 편을 하론(下論)으로 구분하여 앞의 열 편이 더 이전 시대에 서술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각 편의 이름은 그 편 내용의 첫 두 글자를 딴 것으로 특별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


공자의 삶과 행동과 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널리 읽어온 책이 ≪논어≫다. 정확히 누가 언제 이 책을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이 없다. 하지만 ≪논어≫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이 책이 공자가 죽은 뒤 그의 제자들이 스승의 말씀과 행적을 더듬고 자신들의 얘기를 첨가해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대부분 교육에 종사했는데, 여러 곳에서 스승의 말을 죽간 등에 기록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쓰고 이것들을 나중에 모아서 편찬했을 것이다.


 최종 정리는 공자의 가장 나이 어린 제자였던 증삼의 제자들이 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하다. ≪논어≫의 성립에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은 대부분 ≪좌전≫에서 근거를 찾는데, 최근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논어≫가 ≪좌전≫보다 앞서 성립된 것으로 보인다.

논어는 전한 시대에 처음 출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논어라는 명칭 대신 전(傳), 기(記), 논(論), 어(語) 등의 이름으로 불렸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판본이 전해지고 있었다. 


논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은 전한 (前漢)의 6대 경제 (BC 188 - BC 157 - BC 141) ~ 7대 무제 (BC 156 - BC 141 - BC 87) 기간이라고 하며, 후한에 이르러 현재와 같은 형태로 정리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되며, 3-4세기 경 한성백제시대 목간에 5편인 공야장(公冶長) 편의 주요 내용이 기록되어 남아있다.


논어는 어느 한 시기에 편찬되었다기 보다, 몇 차례에 걸쳐 지어졌다고 보이는데, 첫 번째 공자 사후에 중궁, 자유, 자하 등의 제자가 일익을 주도했고, 두 번째 증자 사후에 유자,민자 등이 일익을 주도했으며, 전국시대 맹자 시기 또는 맹자 사후에 누군가 내용을 첨가하고 보충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것은 당시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던 관중에 대한 평가가 상론의 팔일과 하론의 헌문에서 다른 서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관중에 대한 노나라와 제나라의 평가가 서로 나뉘었던 것이 통합되었다는 점에서 노론과 제론을 모두 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내용


상론 10편과 하론 10편은 문체와 호칭 및 술어 면에서 분명히 차이가 나는데, 상론은 문장이 간략하고 글자수가 짧고 하론은 문장이 길고 글자수가 많다. 또한 상론의 마지막 10편 향당은 공자의 일상 생활을 담아 결말을 내는 셈이어서, 하론 10편의 사실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공자 사상은 한디로 하면 인(仁)이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세부 덕목으로서 지(知, 지혜)와 인(仁, 어짊)과 용(勇, 용기)에서의 ‘인’은 협의의 ‘인’이며, 공자가 내세운 모든 덕목을 총칭하는 개념이 광의의 ‘인’이다.

공자는 법이나 제도보다 사람을 중시했다. 사람을 통해 그가 꿈꾸는 도덕의 이상 사회를 이루려고 했다. 그래서 ‘어짊’을 실천하는 지도자로 군자를 내세웠다. 원래 군주의 자제라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는 ‘군자’는 공자에 의해 이상적 인격의 소유자로 개념화되었다. 


군자는 도(道)를 추구하고, 도에 입각하고, 도가 통하는 세상을 만드는 존재다. 이 위대한 정치가는 예(禮)로 자신을 절제하고, 악(樂, 음악)으로 조화를 추구한다. 문(文, 문예)을 열심히 공부[學]해 훌륭한 군자로 거듭나고, 정치(政治)를 통해 민생(民生)을 안정시키고 도덕의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덕(德)과 의(義)가 사회의 중심 가치가 되는 자신의 이상 사회를 끝내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공자는 지난한 삶의 역정 속에서도 도덕 사회의 구현이라는 처음의 꿈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는데, 이 꿈이 녹아 있는 책이 ≪논어≫다.


20편의 구성
상론(上論)하론(下論)
제1편 학이(學而)제11편 선진(先進)
제2편 위정(爲政)제12편 안연(顔淵)
제3편 팔일(八佾)제13편 자로(子路)
제4편 이인(里仁)제14편 헌문(憲問)
제5편 공야장(公冶長)제15편 위령공(衛靈公)
제6편 옹야(壅也)제16편 계씨(季氏)
제7편 술이(術而)제17편 양화(陽貨)
제8편 태백(泰佰)제18편 미자(微子)
제9편 자한(子罕)제19편 자장(子張)
제10편 향당(鄕黨)제20편 요왈(堯曰)

이중 대표적인 학이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子曰:「學而時習之,不亦說乎?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人不知而不慍,不亦君子乎?」

공자가 말하기를: "배우고 틈나는대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아니하여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주석서

논어는 수많은 주석서가 있다. 하안 논어집해를 "고주"라 하고 주희 논어집주를 "신주"라 하여 중요하게 여긴다. 조선 정약용이 지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에서는 고주와 신주에서 각기 보이는 폐단을 극복하고 보다 합리적이고 공자의 원의에 가까운 해석을 하려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특히 당시 조선에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오규 소라이 그리고 이토 진사이 등 일본 유학자들의 주석에까지 고루 시야를 넓힌 점은 정약용의 유연하고 개방적인 사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영향


공자 시대 이후로 논어는 중국의 철학자들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이후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논어는 유교 경전의 다른 세 책과 함께 사서라고 불리며 유교의 기본 가치관인 "예, 의, 충, 인(禮、義、忠、仁)" 이라는 유교적 인본주의를 가르쳐왔다.



거의 2천년 동안 논어는 중국의 학자들이 배우는 기본 과정이 되어왔는데, 공자의 저작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바르고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중국의 과거 시험은 진나라(265-420)에서 시작되어 청나라 말기까지 지속되었는데, 과거 시험에서는 유교경전을 강조하여 수험생들이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글에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평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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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아서 웨일리 찰스 뮬러, 그리고 윌리암 수딜의 번역이 가장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논어의 일부는 예수교 중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볼테르와 에즈라 파운드는 열 번째 향당편에서 공자가 단순한 사람이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근래에 논어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한 시몬 레이즈는 이 어록은 유명한 사람의 개인의 삶을 묘사한 첫 기록일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아스 카네티도 공자의 논어가 가장 오래된 지적이고 영적인 완벽한 개인의 초상이라고 말하며 향당편은 근대적인 책과 같이 감동을 주는데,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빼놓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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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고 그것을 틈틈이 익히면 즐겁지 않겠는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


이렇게 시작하는 ‘논어’가 공자의 말씀을 모아 놓은 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공자가 성인이고 논어가 불멸의 고전이라는 걸 부정할 수 있는 사람 또한 거의 없었다. 20년 전에는 확실히 그랬다.


하지만 요즘도 그런지 필자는 확신하지 못하겠다. 어떤 때는 학생들에게 ‘논어’하면 제일 먼저 연상되는 단어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고리타분’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거름냄새가 구수하게 느껴질 때 참된 농군이 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듯이 논어가 지닌 그 고리타분한 냄새에서 옛 선인들의 체취를 느낄 수 있을 때에야 우리 속에 스며있는 전통의 향기를 논할 자격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겠다.


논어는 2000년 이상 동아시아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 고전 중의 고전이었다. 동아시아의 모든 지식인은, 심지어 불교 승려들까지도, 논어를 반드시 읽어야 했다. 특히 유학자들은 논어를 통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공자 말씀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 갔다.


논어는 조선의 유학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학자들의 재해석 과정을 통해 그 시대의 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논어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논어는 그 자체로도 읽고 음미해 볼 만한 책이지만 우리의 전통사상과 문화가 논어의 해석이라는 모습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도 논어를 꼭 읽어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이런 역사적 이유 외에 논어를 읽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논어는 소위 ‘수레 축 시대’라고 불리는 2500여 년 전의 책이다. 다른 고전도 마찬가지지만 논어에는 문명이 열리면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논어는 간결한 대화의 형식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도 너무 평범하다 싶을 정도로 쉽다. 그렇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공자의 짧고 함축적인 대답은 우리에게 보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주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로 해답을 주는 게 아니라 읽고 나서 한참 있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아 그런 뜻이었구나’하고 감탄하게 하는 책, 이런 책이 정말 고전이라 할 만한데 논어가 그중의 하나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논어를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소위 성인 혹은 현인이라고 칭해지는 공자와 제자들이 보여주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양념 같은 부분 때문에 공자를 성인으로 모신 후대의 유학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서 논어에 실린 공자 말씀들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더불어 성인도 약점이 있음을 알게 되니 얼마나 즐거운지 모르겠다.


논어는 대화록이므로 가까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읽어도 좋은 책이다. 


한문 실력도 늘릴 겸 원문과 대조해서 읽으면 더 좋겠다. 한문으로는 못 읽더라도 주석을 참조하면서 꼼꼼히 읽으면 우리 조상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했던 주희(주자·朱子)의 사상도 아울러 알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될 것이다. 자꾸 읽다가 보면 공자가 나와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며 이래서 ‘공자 말씀’이라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허남진 서울대 교수·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