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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저스 류현진 ===>> 약력 & 야구인생 & 구질 특징



류현진(柳賢振, 1987년 3월 25일 ~ )






류현진(柳賢振, 1987년 3월 25일 ~ )은 메이저 리그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소속되어 있는 투수이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이다




[약력]






류현진
Ryu Hyun-Jin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No.99
Hyun-Jin Ryu 2013.jpg
기본 정보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생년월일1987년 3월 25일 (27세)
출신지대한민국 대한민국 인천광역시
신장188 cm
체중115 kg
선수 정보
투구·타석좌투우타
수비 위치투수
프로 입단 연도2006년
드래프트 순위2006년 2차 1순위 (한화 이글스)
첫 출장KBO / 2006년 4월 12일
잠실 대 LG
MLB / 2013년 4월 3일
다저 스타디움 대 샌프란시스코
마지막 경기KBO / 2012년 10월 4일
대전 대 넥센
연봉350만 달러 (2014년)
경력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올림픽2008 베이징
WBC2009
아시안게임2006 도하, 2010 광저우







고교시절




인천창영초등학교와 동산중학교를 거쳐 동산고등학교에 입학한다. 동산고 1학년 때인 2003년에 제1회 미추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 예선 3경기에 출전해 평균자책 0.00점을 기록하며 동산고등학교의 준우승에 기여하였다.[1] 동산고 2학년 초인 2004년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토미 존 수술을 받아 1년 동안 재활에 매진했다. 




3학년인 2005년에는 제60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에 출전. 8강전인 성남고등학교와의 경기에서는 삼진 17개를 잡으면서 완봉승을 거두었고, 1966년이후 39년 만에 동산고등학교의 6번째 청룡기 우승을 일구어 내며 우수 투수상을 수상했다.(53과 2/3이닝 동안 6승 1패 방어율 1.54)

류현진은 좀처럼 볼수 없는 좌투우타인데 동산고등학교에 재학하고 있었던 송은범은 동산중학교 야구부에서 뛰고 있었던 류현진이 오른손에 글러브를 끼고 있다가 우타석에 서는 것을 보고 "신기했다" 고 회고하였다.

2006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에서 당시 SK 와이번스의 연고지인 인천, 경기, 강원 지역의 Big 3은 동산고등학교 투수 류현진, 인천고등학교 포수 이재원, 인천고등학교 투수 김성훈이었다.


 이 중 류현진이 가장 뛰어났기에 당연히 인천광역시 연고 팀 SK 와이번스가 1차 지명에서 류현진을 선택할 것으로 예측되었으나, SK 와이번스 인천고등학교 포수 이재원을 선택했다. 당시 SK 와이번스 포수 자원을 필요로 했고 1년 뒤 SK 와이번스가 연고권을 가진 안산공고 좌완 투수 김광현을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류현진이 동산고등학교 시절 토미 존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다른 구단에서 지명을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 2차 1라운드 지명에서 전체 4순위 지명권을 가진SK 와이번스가 류현진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그리하여 류현진은 2차 지명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2차 지명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가진 구단은 롯데 자이언츠였기에 류현진이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이와 달리 롯데 자이언츠 나승현을 지명했고, 전체 2순위 지명권을 가진 한화 이글스가 류현진을 지명했다.

 이는 한화 이글스 신인 드래프트 역사상 최고의 스카우트로 여겨지고 있다. 그리고 SK 와이번스는 전체 4순위 지명에서 Big 3 중 남은 한 명인 김성훈을 지명했다.




한화 이글스 시절





입단 당시 등번호는 15번이었으나 한화 이글스에서 15번을 달고 오랜 기간 활동했던 투수 구대성 미국 메이저 리그 뉴욕 메츠에서 한화 이글스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99번으로 변경되었다. 그 때 그는 별 생각 없이 99번으로 변경했으나 이후에는 소속 팀의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재현을 위해 99번을 고수하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재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2006년 프로 야구 데뷔 첫 해 데뷔하자마자 최다승리, 최다탈삼진, 평균자책 1위로 투수 3관왕에 오르며 신인상 최우수 선수상을 동시에 석권했다. 신인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뛰어난 활약으로 '괴물' 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데뷔 첫 해 한국시리즈에도 등판하였다. 뛰어난 활약을 바탕으로 2006년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에 선출되기도 했다.


2007년에는 2년차 징크스를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17승을 거두고 2년연속 최다탈삼진 타이틀을 획득하는 등 여전히 압도적인 구위를 보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본선에 국가 대표로 참가해 예선전인 캐나다전과 결승전인 쿠바전에 선발 등판했다. 캐나다전 완봉승 을 포함, 17 1/3 이닝을 던져 2승0패, 평균 자책 1.04, 13탈삼진의 뛰어난 성적으로 금메달 획득에 기여하며 병역도 해결하였다.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다. 2009년 3월 6일 벌어진 아시아 라운드 첫 경기 대만전에 선발로 등판하여, 3이닝을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승리를 거두었다.

 류현진은 이 대회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출전해 1승0패 방어율2.57을 기록하며 WBC준우승에 기여하였다.



2010년 정규리그 투수 트리플 크라운이 유력할 정도로 압도적인 시즌을 보냈지만 시즌 막판에 부상을 당하며 이탈하고 만다. 결국 다승왕을 구원으로 1승을 추가한김광현에게 내주며 아쉽게도 2관왕에 머물렀다. 그렇지만 스포츠토토 올해의 투수상, 조아제약 최고 투수상, 골든글러브 상, 최다탈삼진 상, 최우수 평균자책점 상, 한경기 정규이닝 최다탈삼진 상등 수많은 상을 획득하며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임을 입증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로도 출전하였으며 대만과의 결승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철벽 마운드를 구축,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공헌했다.



2011년 개인통산 1000탈삼진을 달성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시즌도중 이탈하며 공백이 있었다.


2012년 류현진은 불운한 한 해를 보냈다. 한화 이글스 타자들의 심각할 정도의 부진과 야수들의 형편없는 수비로 류현진을 제외한 모든 한화 선수들은 비난을 받았다. 결국 류현진은 시즌 9승 9패로 7년 연속 두자리 수 승리에 실패하여 데뷔 이래 처음으로 10승을 달성을 하지 못하였다. 


최하위를 전전하는 팀 사정에도 불구하고 많은 메이저 리그 구단 스카우트들이 류의 선발 등판 경기를 보기 위해 매경기를 방문했다. 비록 류현진은 10승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최동원, 선동열에 이어 시즌 200탈삼진 이상을 2번 이상 달성한 선수가 되었으며 6년 만에 200K대의 탈삼진왕이 되었다.






시즌후에는 구단의 동의하에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시도했다.11월 9일 메이저리그 포스팅 시스템 기간이 종료된 결과 2573만7737달러33센트(한화 약 279억8978만원)의 포스팅 응찰액을 받았으며 최고 금액 입찰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밝혀졌다. 12월 10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의 협상 끝에 계약 기간 6년 동안 총액 3600만달러(한화 약 390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였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






2013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 14승 8패 평균자책점 3.00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메이저리그 데뷔시즌을 보냈다. 특히 내셔널리그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는 7이닝을 3안타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한국인 첫 포스트시즌 승리투수가 된다. 




한국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한국인 선수라는 특수성 때문에 류현진은 전 국민적으로 엄청난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류현진이 선발등판한 모든 경기가 MBC 공중파로 생중계 되었고 시청률도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류현진은 전국적으로 굉장히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시즌이 끝나고 한국에 귀국한 후에는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수많은 CF를 찍었는데 CF수익만 4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4년 시즌초반 어깨부상으로 15일짜리 부상자명단에 들었지만 복귀후 투수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쿠어스필드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하는 등, 승수를 쌓아나간다. 이 때부터 류현진, 클레이튼 커쇼, 잭 그레인키를 필두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치고 나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게 빼앗겼던 NL 서부 지구1위를 되찾고 계속해서 승차를 벌려나간다.




특징





제구력, 구위, 운영능력, 체력을 모두 갖춘 선발투수로 평가받고 있다. 직구 평균 구속은 145 km 정도이고 최고 구속은 2007년 8월 31일 잠실 LG전에서 기록한 154km이다.


동산고등학교 시절 커브와 직구가 주 무기였지만 프로 첫 해 현대 유니콘스를 상대로 청주야구장에서 난타당한 이후에는 구대성 선수에게 서클 체인지업을 전수받았다.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은 직구를 던질 때와 같은 투구 폼에다가 팔스윙도 빠르기 때문에 타자들이 현혹되기 쉬워 류현진의 대표구종으로 자리잡았다. 메이저리그에서도 류의 체인지업은 평가가 높은데 2013년 메이저리그 감독들이 선정한 부문별 앙케이트 조사에서 류현진의 체인지업은 내셔널리그 2위에 선정되었다.


2007년에는 한용덕 코치와 함께 슬라이더 구종 개발에 힘써서 130 km 초반의 슬라이더를 추가했다



좌투수지만 공을 던질 때 외에는 모두 오른손잡이로 생활하므로 야구선수 중에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좌투우타이다. 투수뿐 아니라 타자로서의 재능도 워낙 뛰어나서 동산고 시절에는 에이스겸 4번타자로 활약했다



한국에서 인기가 매우 많아 2013년 갤럽조사에서는 한국인이 좋아하는 스포츠 스타 1위에 선정되었다



류현진은 타자를 압도하는 피칭으로 괴물(코리안 몬스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육중한 몸매로 류뚱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류현진은 방송을 통해 메이저리그 야구팬들이 "류뚱"이나 "코리안 몬스터"로 불러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류현진 재단을 운영하여 여러 곳에 기부활동을 하고 있으며 2014년 4월에는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위해 1억원을 기부하였다




위키백과참조










[류현질 구질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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