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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룡해===>약력 & 명실상부 2인자 등극

                                       최룡해(崔龍海, 1950년 1월 15일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이다.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있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다. 조선인민군 대장이 되었고, 뒤에는 차수로 진급했다


경력


1950년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9월 군에 입대하였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사로청중앙위원회 부부장, 부장, 부위원장을 거쳐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1비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황해북도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그리고 2010년 9월부터 당중앙위원회 비서로 있다. 2010년 9월,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다.


2010년 9월에 열린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되었으며, 2012년 4월 11일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또한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었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위기 이후 특사의 자격으로 2013년 5월 중국을 방문하였다.



가족 관계


최룡해는 빨치산 출신으로 인민무력부장을 역임한 최현의 둘째 아들이다.



위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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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택 실각시킨 최룡해는 누구?


장성택의 핵심 측근 2명이 공개처형되고 장성택이 실각한 것으로 보인다는 소식이 3일 알려진 가운데 장성택이 최룡해와의 권력투쟁에 밀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룡해는 북한군 최고위급 인사중 한명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측근 실세로 부상한 인물로 사망한 김일성 주석의 빨치산 동료인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이다.

 최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도 신임을 받았으며 김 국방위원장에 직언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원로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룡해는 김정은 정권 출범 후 실세로 불려왔던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심복으로도 알려졌고 사회주의노동청년연맹 위원장, 도지사 격인 황해북도 도당 책임비서 등을 지냈다.



군 경력이 전무했던 최룡해는 지난 2010년 9월 당시 후계자 신분이던 김정은 제1위원장과 함께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지난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전에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하며 북한군 핵심요직인 총정치국장에 임명됐고 당대표자회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을 했다.

그러나 차수 승진 8개월 만인 지난 2012년 12월 돌연 대장으로 강등돼 권력투쟁 과정에서 군 원로의 원성을 산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니왔다. 

최 총정치국장이 리영호 전 총참모장의 숙청과 군부의 이권사업 빼앗기를 무리하게 진행하는 과정에서 반발을 샀을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최 총정치국장은 2개월 만인 지난 2월 다시 차수로 복귀했고 지난 5월에는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경향신문



北 권력투쟁 승리 최룡해..."제2인자로 등극"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북한의 사실상 2인자였던 장성택이 실각됨에 따라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2인자로 등극하게 됐다.

최룡해는 1950년 황해남도 신천 출신으로 최근 김정은 제1비서 현지지도를 가장 많이 수행하는 최측근이다.

1982년 사망한 전 인민무력부장 최현의 아들인 최룡해는 북한의 만경대혁명학원과 김일성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지난 1980년 사회주의노동청년연맹(사로청) 국장을 시작으로 1986년 사로청 위원장, 도지사 격인 황해북도 도당 책임비서 등을 지냈다.

1990년에는 최고인민회의 제9기 대의원을 역임했고 군 경험이 없는데도 지난 2010년 9월, 당시 후계자 신분인 김정은 제1비서와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아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 전에 대장에서 차수로 승진하면서 북한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됐다, 또 당대표자회를 통해 정치국 상무위원에 임명됐다.

2012년12월에는 대장으로 강등됐지만, 2개월 만인 지난 2월 다시 차수로 복귀해 김 제1비서의 실세임을 과시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로 장성택이 북한의 정치무대에서 퇴장해 북한 지도부에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사실상 제2인자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와함께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의 영향력도 더욱 커지게 됐다"고 해석했다. 

정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 최측근의 공개처형과 장성택의 실각은 김정은의 권력이 현재 매우 공고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향후 북한 지도부에서 김정은에 대한 충성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했다.



노컷뉴스




장성택 사라진 北 권부 핵심 최룡해 '독주' 주목"장성택 공백 빠르게 메울 것"연합뉴스|



"장성택 공백 빠르게 메울 것"

북한 김정은 체제의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숙청됨에 따라 향후 권력 구도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이다.

최 총정치국장은 김정일 체제에서 정치적 부침을 겪었지만 집권 2년차를 맞는 김정은 정권에서는 군부의 최고 실세로 자리잡았다.



사진은 지난 7월 27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정전협정 체결 기념일) 6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오른쪽)과 최룡해 군총정치국장. 





그는 김정은 후계체제가 공식 출범한 2010년 제3차 당대표자회를 기점으로 권력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당시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에 불과했던 그는 이 회의에서 일약 노동당 비서, 정치국 후보위원, 당 중앙군사위 위원으로 선출됐다. 특히 군 경력은 하사관이 전부임에도 불구하고 군복을 입고 군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이어 김정은 정권이 공식 출범한 작년 4월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는 군 총정치국장,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정치국 상무위원 등 요직을 모두 꿰찼다.

김정은 체제에서 사실상 김 제1위원장 다음 가는 군부 2인자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최 총정치국장의 정치적 성장은 김정은 정권의 후견자인 장 부위원장이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군부를 장악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이 대체적이 관측이었다.

최 총정치국장은 장 부위원장에 의해 권력 핵심부로 다시 진입, 총정치국장에 올랐지만 이후 김정은 정권의 '백두혈통'을 강조하고 장 부위원장 독주에 제동을 걸면서 갈등을 빚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제1위원장이 불과 집권 2년 만에 자신의 강력한 후견인이었던 장성택을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숙청할 수 있었던 데는 최 총정치국장의 이런 역할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사실 최룡해는 군 경력은 없지만 그의 부친 최현 전 인력무력부장이 김일성 주석과 함께 활동한 항일빨치산 거물이었다는 배경이 그의 대장 진급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

더욱이 최현은 동북항일연군에서 김 주석을 훨씬 능가하는 빨치산이었지만, 김정일 후계체제를 적극 지지한 원로로 김일성 3대 세습 지도자 모두와 군부의 존경 대상이다.

최룡해가 군부 원로들과 큰 갈등없이 군부 2인자로 자리잡아갈 수 있었던 것도 북한 군부에 최현과 가까웠던 원로들이 적지 않게 살아있는데다 최현의 부하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최룡해가 1990년대 중반 '사로청 사건'으로 청년동맹 간부들이 전부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김정일 후계체제에 기여한 부친의 공로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최룡해는 청년동맹을 '김정일의 사로청'이 아닌 '최룡해의 사로청'으로 만들고 외화 횡령 등 부정부패와 여자문제까지 굉장히 사생활이 난잡한 인물로 낙인 찍혔다.

그럼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으로 살아남은 그는 평양시 수도건설사업소 당비서를 거쳐 노동당 총무부 부부장을 역임했으며 2006년 황해북도당 책임비서로 정계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2007년 10월에는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넘어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현장에서 영접한 북한 측 최고위직 인사였다.

대북소식통들은 "장성택이 사라진 김정은 정권에서 군부를 장악한 최룡해의 독주가 예상된다"며 "최룡해의 정치력과 리더십은 북한 권부 내에서 익히 잘 알려져 있어 장성택의 공백을 빠르게 메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




‘넘버2’ 떠오른 북 최룡해, 권력재편 전면에 등장 가능성


혁명 1세대 부친 ‘후광’… 김정은과 한날 대장 칭호
ㆍ‘포스트 장성택’ 위상에 군부 발판 강경노선 이끌 듯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실각이 확인될 경우 가장 주목받는 이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63)이다. 단박에 ‘권력 2인자’ 반열에 오르며 ‘김정은 체제’를 지탱할 중심축이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온건파인 장 부위원장과 달리 군부를 발판으로 강경 노선을 이끌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최 총정치국장은 2010년 9월 ‘3대 세습 후계자’ 신분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와 함께 대장 칭호를 받으며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김정은 시대’인 지난해 4월 차수로 승진하고 당·군의 주요 정책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총정치국장에 올랐다.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도 겸하고 있다. 장 부위원장과 함께 ‘김정은 시대’를 견인하는 한 축으로 평가받았다. 장 부위원장이 물러난 이후 최 총정치국장이 명실상부한 2인자 지위에 오를 것이란 전망도 그 때문에 나온다.



노 전 대통령 방북 당시 마중나온 최룡해 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이 황해북도당 책임비서이던 2007년 10월2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군사분계선을 걸어 통과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영접하며 악수하고 있다. | 노무현사료관 제공



장 부위원장의 실각이 아직 최종 입증되진 않았다. 실각이 사실이라면 최 총정치국장이 ‘포스트 장성택’의 위상을 가질 것이란 게 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그가 장 부위원장과의 ‘권력 쟁투’에서 승리한 것이라면 향후 권력지형 재편 과정에서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제1비서가 ‘1인 지배’를 굳건히 하려고 장 부위원장을 내쳤다고 해도 원활한 권력 운용을 위해 최 총정치국장을 필요로 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이 북한의 정치무대에서 퇴장하게 돼 최룡해가 사실상 제2인자 지위를 공고히 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최 총정치국장이 부각되는 데는 아버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후광도 작용하고 있다. 최현은 일제강점기 중국의 동북항일연군에서 빨치산 지휘관으로 활동한 ‘혁명 1세대’다. 김일성 주석의 동료이자 막역한 사이였다. 어머니 김철호도 빨치산 출신이다


장 부위원장이 산전수전을 다 겪은 것에 비하면 최 총정치국장은 부모의 영향 덕에 상대적으로 순탄하게 살았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남한에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때인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육로로 방북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군사분계선에서 영접한 첫 북측 인사였다.






최 총정치국장이 북한 권부의 실권자로 떠오를 경우 대내외 정책이 전체적으로 강경 기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그는 군 출신은 아니지만 현재 군부를 총괄하고 있고, 이는 힘의 바탕이 되고 있다. 


장 부위원장이 경제개혁과 대외 개방에 관심을 기울였지만 최 총정치국장은 그에 불만을 가졌단 말도 나온다.


지난해 1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 지난 2월 3차 핵실험 등 강경 대외 노선을 주도한 것도 최 총정치국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지난 5월 김 제1비서의 특사 자격으로 중국을 방문한 것은 ‘최고지도자’의 신임이 두터움을 보여준다.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리영길 총참모장, 서홍찬 인민무력부 제1부부장 등 군 핵심인사들이 대표적으로 그를 따르는 인물로 분류된다. 당에선 리영수 근로단체부장, 문경덕 평양시당 책임비서가 그와 가깝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