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의 계보…그들은 이렇게 진화했다]
사람들은 “양은이파가 도대체 언제 시절의 이야기이냐”며 놀라워했지만, 이는 실상을 모르는 이들의 반응이다. 조직폭력배는 사라진 게 아니다. 떼 지어 몰려다니고, 각목이나 흉기를 들어야만 조폭이던 시절은 지났다. 그들은 사채업, 풀살롱, 주식 투자 등으로 음성화·합법화 돼 우리 곁에 있다.
우리나라에 현대적 의미의 ‘조폭’을 처음 결성한 사람은 김두한 전(前) 국회의원이었다. 1930년대 후반 서울 종로 우미관 일대를 무대로 삼아 ‘주먹계’를 장악했으며 해방 직전까지 일본 야쿠자에 대항하는 ‘항일 주먹’으로 이름을 날렸다. 두 손과 두 발을 자유자재로 썼다는 전설적 싸움꾼이었던 그는 의리를 중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해방 이후, 물러간 하야시의 자리에는 평양 출신의 이화룡이 자리 잡았다. 동대문에는 자유당의 ‘정치깡패’로 잘 알려진 이정재가 터를 잡았다. 조폭계는 김두환, 이화룡, 이정재의 3각 구도로 재편된 것이다. 이들은 해방과 6·25 등으로 혼란한 정국에 뛰어들어 스스로 정치인이 되기도 하고(김두한), 정권의 하수인 노릇(이정재)을 하기도 했다.
1960년 4월18일, 정치화된 조폭들은 이승만 정권에 항의하는 고려대 학생들을 각목 등으로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정치깡패’는 사람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고,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세력에게는 ‘본보기’ 척결대상이 됐다.
‘정치깡패 소탕’으로 서울은 한동안 조용했다. 하지만 곧 ‘명동파’ 이화룡의 중간 두목급으로 활약했던 신상현이 중심이 된 신상사파가 서울 명동·충무로·을지로 일대를 장악했다.
1975년 1월2일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 신상사파 거두(巨頭)들의 신년회장. 당대의 ‘주먹’이 모두 모인 ‘위풍당당’한 연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조폭 르네상스…호남 3대 패밀리가 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전국을 주름잡은 ‘호남 3대 패밀리’는 조양은의 ‘양은이파’, 김태촌의 ‘서방파’, 이동재의 ‘OB동재파’를 일컫는 말이다.
조양은은 광주 OB파의 행동대장으로 활약했다가 1970년대 초반 상경해 범호남파의 두목 오종철의 휘하에서 활동했다. ‘사보이호텔’ 사건을 주도했으며, 1976년 김태촌(63)에 의해 오종철이 불구가 되자 서로 쫓고 쫓기는 혈투를 벌이기도 했다.
1980년 조양은과 김태촌이 동시에 감옥에 갇히자 이동재를 중심으로 한 OB동재파도 독자적으로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동재는 조양은·김태촌의 그늘에서 빛을 보지 못하다가 유력 조폭으로 주목받기 시작했지만, 1980년대 말 서초구의 한 온천장에서 양은이파 조직원들의 습격을 받은 뒤 미국 이민을 떠나 현재 미국 LA에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후반 서울 강남 일대는 ‘호남 3대 패밀리’를 필두로 한 조폭의 유혈 난투극장이었다. 급기야 1986년 8월. ‘서진 룸살롱’에서 끔찍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 지난해 인천 길병원 장례식장에서 폭력배가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 이들은 출동한 형사들 앞에서 칼부림까지 했다. /SBS 캡처
범죄와의 전쟁이 시작되고 3년 후, 전국의 두목급 조폭 200여명이 체포됐다. 1998년까지 적발된 조직폭력원 수는 1만1000여명. ‘호남 3대 패밀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군소 조폭 몇개만 ‘조용히’ 활동했으며 한동안 거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정부도 이들을 영원히 잡아 둘 수 없었다.
2000년을 전후해 하나, 둘 출소하기 시작한 조폭들은 새로운 사업을 찾기 시작했다. 국제조직범죄연구소의 안흥진 대표는 “대대적 단속이 있은 뒤, 조폭들이 ‘지나치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다”고 했다. 때마침 ‘벤처’ 붐이 일었고, 일부는 ‘벤처 투자자’로 변신했다. 사채업을 운영하며 정·관계 로비스트가 되기도 했다. 조직은 더욱 합법화·체계화 됐다.
기술의 발달도 무리지어 다니는 조폭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해줬다. 안 대표는 “‘예전에는 1시간 만에 100명을 모을 수 있다’거나 ‘조직원 수가 수백명이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조폭들의 자랑거리였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했다. 휴대전화로 문자 한 번만 돌리면 수백명의 조폭들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비회사’ 간판을 내걸고 합법적으로 활동하는 조폭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겉보기에는 경비회사 직원처럼 보이며, 민간인 앞에서는 웬만해서는 싸우지 않는다. “튀면 죽는다.” 과거로부터 생존법을 배운 것이다. 안 대표에 따르면 이들이 명시적으로 한꺼번에 모이는 경우는 장례식이나 결혼식 때다. ‘세(勢)’를 과시하고, 새로운 ‘사업’ 정보를 얻으며 친목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유혈참극의 시대는 끝났지만, 조폭들은 새로운 사업을 하며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항상 있다는 말이다.
조선닷컴
[깡패와 건달로 본 100년]
[거룩한 계보] 대한민국 조폭의 대해부
[양은이파·범서방파 위축되고, 충북 파라다이스파 급부상]
경찰 블랙리스트에 가장 많아
전국 조폭조직 216개, 5425명… 경기 最多, 서울·경남·전북順
새누리당 강기윤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찰이 관리하는 폭력조직은 전국적으로 216개, 관리 대상 조직원 수는 5425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221개 조직, 5413명이 관리 대상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최근 5년 새 규모 면에서 별 변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관리 대상은 과거 조폭으로 규정돼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공식적인 조폭들이다.
지역별로는 경기도에 31개 파, 893명이 관리 대상에 올라 있어 가장 많았고, 이어 서울(22개 파·479명), 경남(18개 파·411명), 전북(16개 파·408명) 등 순이었다.
지난달 두목이 다른 조폭 조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된 대구 향촌동파(75명)가 그 뒤를 이었고, 영화 '친구'의 모델로 알려진 부산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71명), 인천 부평신촌파(65명), 광주 국제PJ파(65명) 등도 요주의 관리 대상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조폭들이 유흥업소 등을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활동했다면 최근에는 이권(利權)을 중심으로 이합집산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조선닷컴
[최대 조폭 ‘범서방파’, 경찰 “사실상 와해시켜”]
조직원 80여명 중 61명 입건
두목 등 18명 추적…“재기 어려울것”
국내 최대 폭력조직 범서방파는 과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까.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1일 보호비 명목으로 유흥업소 업주한테서 금품을 갈취하는가 하면, 유치권 분쟁 현장에 개입해 집단폭력을 행사하고 부산 최대 폭력조직 ‘칠성파’와 패싸움을 벌이려 한 혐의 등으로 국내 최대 폭력조직 ‘범서방파’ 부두목 김아무개(47)씨 등 8명을 구속하고 53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조직원 80여명 가운데 61명이 입건된 것이다.
김태촌이 이끌던 범서방파의 전신 서방파는 1977년 조직돼 행동대장인 김씨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했고, 1970~80년대 당시 양은이파·오비(OB)파와 함께 ‘어둠의 세계’를 주름잡았다. 1989년 서방파의 행동대장 격인 정아무개씨가 살해되는 등 서방파의 위상이 도전받자 김씨는 세력 재정비를 위해 범서방파를 결성했다.
김씨의 활동 무대는 정·재계와 연예계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다. 1976년 김씨 일당은 박정희 정권의 사주를 받고 신민당 전당대회장에 난입해 당시 김영삼 후보 쪽 대의원에게 각목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했다. 김씨는 1986년에는 인천의 나이트클럽 사장 황아무개씨를 흉기로 난자한 사건으로 징역 5년을, 1992년에는 범서방파를 결성한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유명 영화배우를 협박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해 1월 65살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범서방파는 김씨의 구속과 사망 이후에도 두목 김아무개(48)씨 등을 중심으로 조직 재건에 매달려왔다. 경찰은 “다른 조폭들이 범서방파와의 이권 다툼이 있으면 한발 물러날 정도로 이들은 폭력조직 사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김태촌의 후계자이자 대한민국 최대 조직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여전히 김씨를 추종하는 세력이 많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수사로 사실상 범서방파는 와해돼 재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두목 김씨 등 18명도 추적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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