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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소/문화사 &시사

[한일위안부 협상 타결] 기자회견전문 & 영향

한국과 일본, '위안부 협상' 타결하다(기자회견 전문)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협상을 타결했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극적으로 타결지었다고 밝혔다.

한일 양국이 함께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아베 일본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을 통해 위안부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말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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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기시다 외상은 이와 함께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일본 정부는 물론 아베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합의문 내용은?

KBS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해 합의한 내용은 대략 3가지로 요약된다.

1. 위안부 문제가 군 관여하에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힌 문제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통감하고,


2.아베 총리가 위안부로서 고통과 상처를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하며,


3. 한국 정부가 위안부 지원을 목적으로 한 재단을 설립하면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을 일괄 지원해 한일 양국 정부가 협력하는 사업을 실시한다는 내용이.(KBS, 12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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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1992년 1월 8일 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 정기 수요집회는 1995년 일본 고베 대지진 당시 집회를 취소하고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때 항의집회를 추모집회로 대신한 경우를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정오에 빠짐없이 이어져 왔다.



한일이 공동기자회견에 발표한 전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재단 설입에 들어갈 예산으로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 돈으로 약96억6,980만 원 가량이다.


이번 회담 결과로 인해 한일관계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크다.헤럴드경제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위안부 협상을 타결 지은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한일 양국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상호비판을 자제하기로 했다”며 “이로써 그동안 한일 관계는 물론 미국, 중국이 엮인 다자관계에서도 늘 걸림돌이 돼 왔던 위안부 문제 부담이 상당히 해소되게 됐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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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이 양국 외교장관 기자회견을 시청하고 있다.



하지만 협상 내용을 놓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의견도 다소 엇갈리고 있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피해자 외면한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했고, 이용수 할머니는 타결 내용에 대해 "위안부 할머니들 위한 생각 없는 듯"이라고 했다. 반면, 유희남 위안부 피해할머니 "정부 하신대로 따르겠다"며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위안부 소녀상'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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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11년 12월 14일 정대협이 1천번째 수요집회를 맞아 일본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소녀상을 세운 뒤 시민들이 따뜻한 정성과 위로를 담아 다양한 옷을 입힌 모습.



일본 정부가 철거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위안부 소녀상'은 한국 정부가 사실상 '철거'로 가닥을 잡았음을 보여준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발표한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철거를 하는 것일까. 정부 관계자는 조선일보와의 12월28일 인터뷰에서 ‘위안부 소녀상’ 철거 논란에 대해서는 “일본 내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철거 이야기가 나왔지만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다소 상반된 답을 내놓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번 회담 결과를 놓고 아베 총리와 통화를 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12월28일 보도에 따르면 “근혜 대통령은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타결된 것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고,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청와대가 밝혔다”고 말했다.




다음은 양국 외교장관 간 공동기자회견 전문이다.


◇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

국교정상화 50주년 맞아 서울 방문하고 윤병세 만나서 외교장관회담 개최한 것 기쁘게 생각한다.

일한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 국장급 협의등을 통해 협의해왔다 그 결과 기초해 일본 정부는 이하를 표명한다.

1.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하에 다수 깊은 위안부의 명예 상처 입은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 총리대신으로 다시 한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갖고 상처입은 분들에게 마음으로 부터 깊은 사죄를 표명한다.


2. 일본 정부는 지금 문제 진지하게 임해왔고 이에 기초해 이번에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 하기로 한다.


3. 일본 정부는 이상 말씀 드린 조치 한국정부와 함게 착실시하고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 한다. 일본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본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


앞서 말씀드린 예산 조치에 대해서 규모로서는 10억엔 정도 산정하고 있다.


이상 말씀드린 것은 양 정상 지시에 따라 협의한 결과이고 일한 관계가 새로운 시대로 들어갈 것을 확실하고 있다.



◇ 윤병세 외교부 장관

한일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까지 양국 국장급 협의를 통해서 집중적으로 협의했다. 이를 기초해서 한국 정부는 아래와 같이 표명한다.


1.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표명과 이번 발표에 이르는 조치를 평가하고 일본 정부가 앞서 표명한 조치를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


2. 일본정부가 한국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을 우려하는 점을 인지하고 관련단체와의 협의하에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


3.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이행된다는 전제로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


이상으로 한국정부 입장 말씀드렸다. 한일국교정상화 50년 넘기기 전에 기시다 외무상과 그간의 지난했던 협상에 마침표 찍고 선언한 것을 대단히 기쁘게 생각한다. 근본 협의의 후속조치가 확실히 이행돼 피해자 분들의 명예와 존엄이 회복되고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길 바란다.

과거사 현안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협상이 마무리되는 계기로 새로운 한일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길 기원한다.


http://www.huffingtonpost.kr/2015/12/28/story_n_8882818.html?utm_hp_ref=korea






위안부 피해자들, 외교차관에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9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신대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왜 우리와 상의없이 협상을 했느냐” 며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29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위해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신대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에게 “왜 우리와 상의없이 협상을 했느냐” 며 항의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정대협 쉼터 방문한 임성남 차관에게 “사전 협의 없었다” 강하게 항의
“소녀상은 비극 배울 역사의 표시…이전 안돼” 수요집회 계속 뜻 밝혀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일 양국의 위안부 문제 협상 타결 내용을 설명하러 찾아온 정부 당국자에게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강하게 항의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를 찾아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를 1시간 가량 만나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쉼터 거실 소파에 앉아있다가 임 차관이 들어서자 벌떡 일어서서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이랑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호통부터 쳤다.

소녀상 이전이 논의된 것 자체도 항의했다. 김 할머니는 “소녀상은 시민들이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세운 것”이라며 “우리나라나 일본 정부가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며, 후세가 자라면서 ‘우리나라에 이런 비극이 있었구나’ 하고 보고 배울 역사의 표시”라고 말했다.

임 차관은 “할머니가 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가장 큰 원칙은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회복이었다. 가장 큰 세 가지는 일본 정부의 책임통감, 아베 총리의 사죄와 반성 언급, 피해자 지원 재단 설립”이라고 말했다.

임 차관이 돌아간 뒤, 기자들과 만난 할머니들은 소녀상 이전에 대해 ““소녀상 이전은 안 된다는 우리 얘기를 듣고 차관이 ‘잘 알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할머니들은 일본이 진정한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할 때까지 수요집회를 이어나가는 등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래는 할머니들과 임 차관의 대화 내용이다. 

  

이용수 할머니 = 당신 누구에요? 뭐하는 사람이에요?

임성남 1차관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할머니 =해결했어요? 보고하러 왔어요? 왜 우리 두번 죽이러 왔어요. 당신이 제 인생 살아주는 거에요? 회담 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할 거 아니에요. 먼저 한다고 얘기해줘야 할 거 아니에요. 나이 많다고 무시하는 거에요.

임 차관 = 아닙니다.

이 할머니 =당신은 소속이 어딥니까?

임 차관 =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입니다.

이 할머니 =외교부 뭐하는데에요. 짝짜꿍하는 데에요? 민족의 수난으로 이렇게 고통 당하고 있는데 이렇게..

임 차관 =그럴 리가 있겠습니다.

이 할머니 =미리 얘기해 줘야할 거 아니에요. 역사의 산증인이 이렇게 살아있는데. 당신은 부모 없어요? 엄연한 대한민국 조선의 딸이에요. 우리의 생각은 조금도 없어.(울음)

임 차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할머니 =정식사죄, 법적배상 해야하는데, 왜 보고 있어요. 외무부 뭐하고 있어요. 왜 우리가 당해야 하는거에요. 다 죽길 바라다가 안 죽으니까 이렇게 해서 죽이려고 드는 거에요? 왜 안 알려줘요. 아무리 몰라도 일러줘야 할 거 아니에요.

임 차관 =그래서 이렇게 뒤늦게라도 제가 왔습니다.

김복동 할머니=협상하기 전에 우리한테 이야기를 들었어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겠다 말이 나오지 않겠어요. 정부끼리 쑥떡쑥덕해서 타결됐다, 이렇게. 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꼴 볼라고 그런 게 아니잖아요.

임 차관=저희가 미리 말씀을 못드렸던 것은 연휴기간 뒤에 이렇게 급하게 진전이 되서...

김복동 할머니=아직 타결 안 됐어요. 우리가 돈 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정부가 생활비 대주지, 아프다 하면 돈 보내주지. 그거 하나만은 진짜 고맙다고요. 이렇게 배 안 곯고 살면서, 돈이 탐이 나서 그런 게 아니다. 내 마음으로는 돈이 문제가 아니다. ‘민간인이 이런 짓을 했다’고 하니 자기들이 일본 왕이 전쟁 치르면서 군인 사기 위해 남의 귀한 딸 희생시켰으면 왕이 죽고 없으니 아베가 계승하고 있으니 조상들이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법적으로 사죄와 이런 걸 해야함에도 그냥 정부와 정부끼리 이래놓고 ‘우리 정부가 타결됐다’, 이게 말이 안된다.

그리고 왜 소녀상을 들먹이나. 우리 정부나 일본정부나…. 국민 한푼한푼 모아서 우리 소녀들이, 후세들이 자라나면서 역사의 표시로서 대사관 평화의 길이라고, 길 건너에 놨는데 옮겨달라, 말이 안된다고. 전세계 미국이고 어디고 소녀상 세워놨는데 그건 엄연히 역사다, 표시다. 이런데도 우리 정부가 옮긴다는 얘기를 하나 싶은데. 우리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나라가 힘이 없어 끌려가서 우리가 욕을 봤으니, 될 수 있는대로 확실히 매듭을 지어야. 자기들끼리 빨리 하기 위해서 정부와 정부가 ‘그 까짓거 위안부’ 이렇게 얼버무리려 하나.

이 할머니=아베가 정중히 공식 사죄하고 우리가 20수년을 길에 앉아서 외친 말이 있지 않나. ‘공식 사죄하고 법적으로 배상하라’. 이걸 해야. 아베가 나와서 사죄하고, 법적인 배상을 해야한다. 그래서 신문에 보도해서 해결했다 이렇게 해도 시원찮은데. 즈그들 ‘다 해결, 타결’ 이렇게 합니까. 그걸 어떻게 보나.

임 차관=어제 한일외무장관 회담 통해 협의사항 발표, 할머니들 보시기에 부족한 점 많을 것이다.

김 할머니=부족하다니 택도 없는디….

임 차관=제가 좀 말씀을…. 이번에 시간적 제약이랄까. 연휴 동안에도 계속 조금이라도 나은 방향으로 풀어가려 노력했다. 우리 정부 가졌던 가장 큰 원칙은 대통령도 어제 말씀하셨지만 할머니들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는 것, 그게 가장 큰 지침이었다. 여러가지로 부족하고 하겠습니다만 3가지, 1)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는 것 2)아베 총리가 일본의 내각총리 대신으로서 할머니들에게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시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어제는 아베가 안와서 기시다 외무대신이 아베 총리의 말을 전한 것이다. 아베가 어느 시점에 말할지는…. 그럴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다는 말을 한번도 안 하다 어제 처음 외무장관 입을 통해 총리대신 말을 전했다. 3)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어떻게 살려드리느냐가 우리의 가장 큰 목표다. 그를 위해 정부가 재단을 세워, 돈을 조금 드리고 하는 게 아니라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 그동안 살아온 인생여정을 어떻게 잘 보존하고 앞으로 남은 여생을 어떻게 하면 좀더 편히 살것인가. 이런 목표를 갖고 재단을 만들고. 그를 위해 일본 정부가 예산을 댄다. 이게 아무것도 아닌게 아니다.

법적배상, 공식사과 언론에서 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모자 밑에 들어갈 3개의 알맹이가 뭐냐. 1)정부가 책임을 인정하는 것. 2)행정부 수반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고 반성을 하는 것. 3)그에 따른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 그래서 모자는 혹시 할머니들 원하는 스타일 모자가 아닐지 몰라도 모자 밑의 알맹이는 우리가 있는 최선을 다해서 갖춘거다.

어머니 같은 할머니들 앞에서 이런 말씀 드리기 뭐하지만 할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다. 다 돌아가시고 나서 일본에 뭘 요구합니까? 시간이 중요한 거 아닙니까. (박) 대통령도 그래서 올해가 한일 수교 50주년인 것도 있지만 더 돌아가시기 전에 이 문제를 결말짓는다고 할까, 해결하기 위한 지침을 대통령께서 주신 것이고 그런 지침에 따라서 저희가 최선을 다한 것이다.

이용수 할머니가 저한테 야단도 치셨는데, 오늘 야단맞기 위해 왔다. 왜 사전에 와서 협의 안했나. 교섭이라는 게 상대가 있고 그러다보니 저희가 여의치 못했다. 3일간 제가 잠을 못잤다. 저의 어머니가 할머니들과 나이가 같다. 저의 어머니랑 똑같은 위치에 계시다고 생각하고 밤마다 고민하고 교섭에 임했다. 오늘 더 야단쳐 주시고. 끝이 아니다.

이 할머니=타결을 했다? 아베가 사죄하고 법적인 배상한다고 해야 한다. 아베가 나타나지도 않아. 이게 거짓말이 아닌가. 아베가 나왔나?

임 차관=이거는 1막의 끝일 수 있지만 2막의 시작이다.

 

비공식 대화 뒤, 기자들과 할머니들의 대화

-오늘 1차관 왔다 갔는데 소감은?

=(김 할머니)사전에 자기네들 협상하기 전에 할머니들한테 어떻게 해야만 되겠는가 하고 질문을 했으면 우리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을텐데 정부간에 쑥떡쑥덕 하더니 타결됐다. 뭐가 타결됐다 말인가. 그저 잘못했다. 그래서 타결이 되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아베가 나서서 법적으로 기자회견 해서 과거의 한 짓이 잘못됐다 용서해달라.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달라는 것. 돈을 바라는 게 아니다. 내 마음은 돈이 필요없다. 법적으로 명예를 회복 시켜달라. 이게 우리가 바라는 것. 우리는 타결이 안 됐다. 정부는 타결됐다고 하지만. 앞으로 지금 싸우는대로 계속 싸워나갈거다.

-소녀상 이전한다고 차관이 말했나?

=(이 할머니)차관도 그거는 말도 안되는 얘기라고 했다. 소녀상은 피해자 할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다. 소녀상한테는 아무도 손을 못댄다. 미국에 가서도 소녀상 철거하라고 하고, 돈 써가면서 일본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심리는 자기들이 죄가 있다는 것을 없애기 위해 소녀상 철거하라는 것. 왜 뭣 때문에 철거하라는 건가. 건방진 거 아닌가. 한국에 다 세우고 미국에도 곳곳에 다 세울 것이다. 동경 복판에도 세워야, 반드시 세울 것이다.

-차관이 (소녀상) 이전 않겠다고 확답했나?

=(김 할머니)우리가 소녀상 치울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까 차관이 ‘잘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나올지. 소녀상에는 손대면 안된다. 대사관 앞도 평화의 길이라고. 치우라고 할 게 아니라 싫으면 지들이 이사가면 되잖아. 우리 정부도 치우라고 할 권한이 없다. 우리가 한푼한푼 모아서 이런 비극에 대한 역사의 공부가 되게 하기 위해 세워놨는데 그걸 치우라고 할 의무가 없다.

=(이 할머니)무슨 피해가 가나.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워놨는데 대사관이 이동하면 소녀상도 따라가야지. 피해가지 못한다.

-수요집회도 계속 할 생각인가?

=(이 할머니)더 열심히 해야지. 할머니들이 기력이 없으니 걱정되는 것은 건강이 안 좋다. 평화적으로 빨리 끝냈으면 좋겠는데 일본은 망언, 거짓말 어떻게든 피해가려고만 하고. 끝까지 문제제기해야. 수요집회 할 것이다.

-이번 수요집회에서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어떤 말씀하고 싶나?

=(이 할머니)일본이 다 타결, 사과하고 됐다고 보도하는데. 분명히 해야하는데 분명치 못하다. 죄의식 못느끼고 너희는 돈벌러 간 거 아닌가. 억지소리만 하고 있다. 일본이 진정 죄가 있다면 진실된 마음으로 총리가 일본 대사관 앞에 와서 사죄해야 한다. 아베는 미안하다고 하는데 법적인 사죄를 느끼지 못한다. 일본은 인정하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다. 이렇게 망언만 하고 있다. 진실된 사과와 배상받기 위해 우리는 멈추지 않고 싸워갈 것.  

-차관 말은 충분했나?

=(이 할머니)충분하다니. 나는 무시했다. 말도 안되는 그걸 어떻게 받나. 우리 정부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다.

-정부에서 미리 와서 얘기한 적 있나?

=(이 할머니)한번도 없다. 지그들 맘대로 임의대로 했다. 그러니까 더 책임이 없지. 자기들끼리 정부와 정부끼리 쏙닥쏙닥, 어안이 벙벙하다. 무얼 갖고 타결됐다고 하나. 우리가 20수년을 일본대사관 앞에서 외치고 있지 않나. 법적배상하라. 사죄하라. 그런데 그냥 타결됐다. 이거는 그냥 무시하는 거다.

=(김 할머니)박정희 대통령이 협상을 할때 우리들 일로 같이 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안싸운다. 일본 정부는 그때 다했다, 우리 정부는 그때 빠졌다. 이렇게 하니까 어떻게 싸워야 하나. 우리 정부가 책임져야 하지 않나. 자기 아버지가 해결 못한 것을 따님이 대통령 됐으니까 네가 해결 지어라. 이렇게 말을 했더니 이게 해결인가. 할머니들한테 말 한마디 없이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더니 타결됐다. (박) 대통령이 말하기를 ‘과거에 보상한 거는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 서로 이해하고 뭐 하라고’. 아침에 테레비에 나오더라고. 자기 언니나 형제간이라도 그래 끌려갔으면 그 따우 소리가 나오겠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일본정부가 아베가 직접 나서서 법적으로 사죄하고 교과서도 다 고치고. 문제는 외국에 있으나 한국에 있으나 소녀상 그걸 하지마라. 우리의 역사를 생각해서 소녀상을 세워놓은 것을 우리 땅에 세워놓은 것을 간섭하지 말라. 말하지 말라.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사죄하고 우리의 명예만 회복시켜준다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기가 좀 힘드네요”(차관이).. 이렇게 나오면 우리가 끝까지 싸울 거다. 이래가지고는 우리와 협상이 안된다. 여러분도 사진만 찍어가지 말고 좀 국민들이 알게시리 홍보를 해달라. 만날 찍어간들 이불밑에 묻어놓고 홍보안해주니 잘 모른다는 거 아닌가. 우리는 타결이 아니라고. 끝끝내 해결날 때까지 싸울 거다.

=(이 할머니)일본이 진정한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하도록 요구한다. 수요집회는 계속해서 끝까지 할거다. 열심히 하겠다. 고맙습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23943.html


외교부 차관 방문에 "일본에 돈 구걸하나…우리는 돈 필요없다"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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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욕외교? 최선의 결과? 위안부 협상을 바라보는 시각들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도출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안’은 다양한 평가와 해석을 낳고 있다. ‘굴욕외교’라는 비판도 있고, ‘최선의 결과’라는 평가도 있다. 합의문 안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부분이 있고, 일치하는 내용도 있다. 이번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과 과정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교차한다.

우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대하는 ‘원칙론’과 ‘현실론’ 중 한국 정부가 ‘현실론’을 택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보인다. 일본에 대한 인식, 역사적 관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신뢰 여부 등에 따라 이에 대한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건 “위안부 문제는 한·일 양국과 피해 당사자들의 입장,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문제, 국민 여론, 양국관계 등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이 얽힌 대표적인 ‘복잡계’”(경향신문 사설)라는 점이다. 


I. 총평

29일자 주요 일간지들 대부분은 ‘한계는 있지만, 성과가 적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국제법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론적 요구와 기대를 모두 충족할 최선책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한국일보 사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타결 내용은 실질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의 양보를 끌어냈다는 외교부의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중앙일보 사설)는 것.

그럼에도 협상 상대가 있는 외교에서는 본질적으로 완승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일본의 법적 책임 불인정 등 아쉬운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적잖은 수확이 있기에 양국의 노력은 인정해줄 만하다. 일본 내 친한 인사들조차 일본의 어느 정권이라도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못할 거라고 단언한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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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오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청와대를 방문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에게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이나 시민사회단체, 야당 등은 이번 합의를 ‘굴욕외교’로 규정하며 반발하고 나섰다. 한겨레도 사설을 통해 “원칙에 어긋나는 내용을 ‘외교적 해법’이라며 국민에게 강요해선 안 된다”며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진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바란다면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복잡한 논리를 펼칠 게 아니라 법적 책임을 흔쾌하게 인정하면 된다. (중략) 아무리 한-일 외교관계가 중요하더라도 문제를 얼버무리는 식으로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두 나라는 위안부 문제의 최종 해결을 언급할 게 아니라 진정한 해법을 위해 새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더불어민주당의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일 합의는 50년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3억원에 도장찍었던 제1차 굴욕 한일협정에 이은 제2차 굴욕 한일협정이라고 단정한다"며 "부녀가 대를 이어 일본에 두차례나 식민지배 면죄부를 줬다"고 말했다.



II. 합의문 쟁점별 평가

이번 합의의 주요 쟁점들을 살펴보면 엇갈린 시각차가 두드러진다. 기본적으로 합의문에는 ‘해석의 여지’가 많다. 원칙론에 따르자면 한국 정부가 일본에 끌려간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지만, 현실론에 비춰보면 일종의 타협을 이룬 결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1. 법적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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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뒤에 시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합의'를 반대하는 메시지를 들고 서 있다. ⓒ연합뉴스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해왔던 단체들은 일본이 ‘법적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국가범죄’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시인해야 한다는 것. 이 부분은 늘 핵심 쟁점이었다.

역대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법적책임이 해소됐다는 입장을 유지해왔으며, ‘도의적 책임’을 인정하는 수준에서 유감의 뜻을 밝혀왔다.

반면 한국 정부는 협정이 맺어진 당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전혀 공론화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법적책임을 인정할 것을 줄곧 일본에 요구해왔다.

이번 합의문에 ‘법적책임’이라는 단어는 명시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문구가 담겼을 뿐이다.

무엇보다 이번 합의는 전시 일본 정부·군이 위안소 제도를 운영한 사실과 이런 사실이 전시에 여성의 인권을 유린한 반인도적 국가범죄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피해자 할머니와 정대협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의 인식을 회피·우회했다. (한겨레 12월29일)

하지만 '일본 정부의 책임 통감'이란 표현 자체는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사이토 쓰요시(齋藤勁) 일본 관방부장관의 물밑 교섭에서 합의됐던 문안이다. 당시 사정에 밝은 전직 관리는 "겨우 이 표현을 얻어내려고 3년이나 허비한 거라면 실망스럽다"고도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책임을 분명하게 밝혔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의적’이라는 표현 없이 일본 정부가 책임을 공식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 이를 ‘외교적 지혜’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한국 정부는 고노 담화에도 없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명문화한 것을 성과로 보고 있다. 고노 담화는 ‘일본 정부는 사죄와 반성의 심정을 말씀드린다’고 했을 뿐 정부의 책임을 명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도의적’ 등의 수식어 없이 책임을 분명하게 인정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중앙일보 12월29일)

‘사사에 안’이나 아시아여성기금 사업 당시 일본 총리 서한에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언급만 있었다. 외교부는 “책임 앞에 수식어가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책임을 최초로 분명히 인정한 것”이라고 밝혔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우리는 법적 책임이 있다고, 일본은 없다고 해석할 수 있게끔 외교적 지혜를 발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동아일보 12월29일)

일본의 법적책임 인정은 기존 조약 등 국제법을 고려할 때 애초부터 불가능한 요구였다는 지적도 나온다.

1965년의 청구권 협정의 본질이 식민지 지배 피해 보상이 아니라 양국 간 재산권 정리였고, 한일기본조약에서 한일합병조약의 효력에 대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봉합한 것 모두가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 한국이 제14조국(전승국)이 아닌 제4조국(신생독립국)이었던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였다. 따라서 65년 기본조약 체제의 전면 수정, 나아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의 전면 부정이 아니고서는 외교 협상에서 꺼내어 들 카드이기 어려웠다. (한국일보 사설 12월29일)


2. 배상,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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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오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8) 할머니가 서울 마포구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적책임 인정 여부는 일본이 내놓을 돈의 성격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이 부분 역시 합의문에 ‘배상’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의 예산에 의해 모든 전(前) 위안부분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사업을 진행하기로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이다.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은 강력히 반발한다.

이용수 할머니는 29일 CBS라디오 김현정의뉴스쇼에서 “보상은 어디까지나 ‘너희가 끝까지 지금 돈 벌러 간 것 아니냐. 그러니까 조금 준다’는 그게 보상이고, 죄에 대한 책임이 배상이다. 그러니까 배상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하는 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 규모의 예산을 출연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정대협은 “그 의무를 슬그머니 피해국 정부에 떠넘기고 손을 떼겠다는 의도”라고 평가했다. (한겨레 12월29일)

기시다 외무상은 협상 타결 직후 일본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돈이 “배상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한 간의 재산 청구권에 대한 법적 입장(배상 문제는 최종 종결됐다는 것)은 과거와 아무런 변함이 없다”는 것.

반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의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역시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발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는 "과거 아시아여성기금에도 일본 정부의 예산이 일부 투입됐지만, 피해자에게 직접 지원되는 자금은 민간 모금으로 마련됐고, 일본 정부 예산은 인도적 사업에 쓰였다"며 이번에는 피해자 지원에 일본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연합뉴스 12월28일)

그러나 이번엔 한국 정부가 만든 재단에 일본 정부가 정부 예산으로 이 돈을 제공하기로 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이 돈을 일본 정부가 위안부 제도를 만들고 운영한 데 대한 사죄의 증거로 해석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이는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 사례에 비춰 본다면 분명한 진전이다. (한겨레 12월29일)

동아일보는 재단 설립이 청와대의 아이디어였다며 “위안부 피해자뿐 아니라 관련 단체도 포용해야 문제 해결에 다가설 수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대협 등은 1991년 위안부 문제가 불거진 이후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데 앞장서 왔다. 하지만 한일 교섭으로 문제가 타결되면 단체들이 존재 의미를 잃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 한일은 이 재단을 통해 ‘명예와 존엄의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 사업’을 하고 자금의 성격도 ‘치유금’으로 불러 관련 단체들이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열었다. (동아일보 12월29일)


3. 위안부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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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세 외교장관(오른쪽)과 일본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이 28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협상 최종 타결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는 부분 역시 해석이 엇갈린다. 이 역시도 합의문에는 명확한 언급이 없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에 관여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만 했을 뿐이다.

여기에서는 ‘군에 관여하에’라는 구절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

더 큰 문제점은 일본이 '책임'을 언급하면서 정작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문제를 누락한 것이다. 이날 기시다 외무상은 '군(軍)의 관여'라고만 했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의 국가적·법적 책임이 문제 되는 것이 바로 위안부 강제동원 때문인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며 "일본이 통감한다는 책임이 결국 '도의적'인 차원이란 얘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김성한 교수는 “‘군의 관여’는 곧 법적 책임을,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문구엔 강제성이 내재돼 있다”며 “일본 정부도 이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박인휘 국제학부 교수 역시 “일본이 직접 거론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공감을 표한 것”이라고 봤다. (중앙일보 12월29일)


4.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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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 앞에서 전쟁반대평화실현국민행동, 참여연대, 평화나비네트워크 등 단체가 한일 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합의내용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강제성 인정 여부와 함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사과 수위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합의문에는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으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와대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타결 직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고 몸과 마음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하는 마음을 전한다”고 재차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부는 아베 총리가 2012년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으로 사죄와 반성을 언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베 총리의 ‘극우적 성향’이나 일본 내 보수파의 반발 등을 감안하면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진전이라는 평가도 있다.

반면 “당사자인 할머니들이 아베 총리의 공개적이고 직접적인 사죄를 요구해온 것에 비하면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한국일보)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정대협은 합의 타결 직후 브리핑에서 “‘대독사과’에 그쳤고 사과의 대상도 너무나 모호해서 진정성이 담긴 사죄라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관여 수준이 아니라 일본 정부가 범죄의 주체라는 사실과 ‘위안부’ 범죄의 불법성을 명확히 하지 않았다”는 것.

5.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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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에는 “이번 발표를 통해 이번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음을 확인한다”는 대목과 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상호 비판을 자제한다”는 언급이 담겼다.

이 부분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하게 고집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시다 외무상에게 “합의에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이라는 문언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교섭을 그만두고 돌아오라”고 주문했다는 것.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것만 명시해서는 안 된다”며 ‘일본이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정부는 ‘불가역적’이라는 표현에도 나름의 의도를 담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 표현은 우리뿐 아니라 일본에도 해당되는 것”이라며 “일본은 한국이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하지 말라는 취지로 이 표현을 넣자고 했는데,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일본도 말을 바꾸지 마라’는 의미로 요구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12월29일)

그러나 합의문에 이런 내용이 담긴 것에 대해서는 거의 예외 없이 비판적인 의견이 제기된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한·일 양국은 물론 세계 무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앞으로 위안부 문제는 절대 거론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스스로 우리 팔다리를 묶는 격이다. (중앙일보 사설 12월29일)

② 그동안 한국이 부적절한 요구를 했다는 뜻인가?

이날 양측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방하는 것을 자제한다"고 밝힌 데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전직 외교관 A씨는 "사실상 우리가 국제사회에서 부적절하게 일본 욕을 하고 다녔다고 인정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12월29일)

③ 정부가 무슨 권리로 못 박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안을 두고 두 나라 정부가 ‘최종’이라고 판단할 권리는 없다. 이번 합의가 얼마나 위안부 피해자와 우리 국민, 국제사회 등이 수용할 만한 내용인지 지켜보는 게 올바른 태도다. (한겨레 사설 12월29일)


III. 합의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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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린 28일 오후 경기도 광주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에서 이옥선 할머니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합의문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건 합의과정이다. 이 부분에서는 정부가 썩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인다.

일단 박근혜 정부는 취임 초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할 것’을 요구하며 강경 정책을 펼쳤다. 이런 ‘강경외교’는 지난해 가을에서야 변화 움직임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서는 완전히 반대 움직임으로 돌아섰다.

정상원 한국일보 기자는 “정부의 대일 정책이 급변하는 과정 자체가 처음부터 문제였다는 지적도 나온다”며 아래와 같이 적었다.

원죄는 박 대통령이 2013년 취임 초부터 일본에 “역사를 직시하라”고 공박하며 한일 정상회담을 거부해왔던 데서 출발한다. 우리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한국에는 전혀 굽히지 않은 채 미일·중일관계를 강화했고, 결국 다급해진 정부는 대화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노선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11월 한일 정상회담 등으로 관계 개선 분위기가 무르익었지만, 결과적으로는 2년 반 동안 대일 강공외교는 소득 없는 빈 깡통이었다는 비판만 떠안게 됐다. (한국일보 12월29일)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의 논의가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먼저 당사자들의 의견을 물어 종합한 뒤 그것을 기초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정부 간 합의를 한 뒤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방식이었다. 당사자들이 반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가 간 협상이고 보안상 문제가 있긴 하지만 정부가 애초 의견수렴과 설득을 병행해야 했다. (경향신문 사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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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이 2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대협 쉼터를 방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 설명을 하기에 앞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항의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일보는 “중요한 것은 피해 할머니들”이라며 “합의 내용에 대해 최대한 세심한 설명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초청해 협상 절차와 결과를 직접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회담 타결 직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하게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해 “대승적 견지에서” 이해를 당부했다.

다음날인 29일 오후, 외교부 1차관과 2차관은 각각 정대협 쉼터와 나눔의집을 방문해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났다. 그러나 할머니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은 29일 오후 2시께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를 방문해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이용수(88)·길원옥(87) 할머니를 만나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

이용수 할머니는 두 할머니와 함께 쉼터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차관이 들어서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 "당신 어느 나라 소속이냐, 일본이랑 이런 협상을 한다고 알려줘야 할 것 아니냐"고 호통을 쳤다. (연합뉴스 12월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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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uffingtonpost.kr/2015/12/29/story_n_8887904.html?utm_hp_ref=korea









박정희 1965년 한일협정과 놀랄만큼 닮았다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 vs.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 쐐기 박은 굴욕 협상

박근혜 대통령 3년차인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 3년차인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과 닮았다. 국민 특히 피해자의 목소리가 무시됐고,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공동의 합의문을 만들지 않아 각국 정부와 언론의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해당 합의로 문제를 덮는 효과도 비슷하다. 


지난 28일 양국의 합의내용은 △‘위안부’ 문제에 일본정부가 책임을 통감한다 △아베 총리 사과 표명 △한국정부가 설립하는 피해자 지원을 위한 재단에 일본정부가 자금을 내고 이후 양국이 협력해 사업을 한다는 것 등 세 가지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한국과 일본 간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과 부속 협정 4가지)과 비교해보자.  



국민·피해자 목소리 외면 “최종적으로 해결”


1961년부터 김종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비밀리에 진행한 한일협상 내용이 알려지자 1964년부터 국내에서는 한일회담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김 전 부장은 “제2의 이완용”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내 3억달러를 받으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를 끝냈다. 지난 28일 외교장관회담 결과가 나오자 비판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민철 민족문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29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이번 합의는 1965년 합일협정과 사실상 똑같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1965년 한국이 발표한 합의문에서 양국이 피해자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것과 닮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하겠다는 뜻이다. 김 연구원은 “그동안 피해자할머니들과 시민단체가 요구했던 것은 일본정부의 법적 책임을 묻고 교육사업, 즉 위안부 문제를 삭제했던 일본 교과서에 이를 다시 실어서 가르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합의문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일본정부의 심기 건드리지 않기 “배상 아니다”

김 연구원은 “합의문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민간이 아닌) 국가 간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것도 전적으로 일본 쪽 의견을 들어준 것”이라며 “명백하게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외교장관은 “(양국) 정부는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번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 발표했다.


  
▲ 1962년 10월 오히라 일본외상과 회담하고 있는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
 

박정희 정권은 1965년 한일협정에도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1960년 일본 극비문서에는 회담 이전부터 과거에 대한 보상없이 경제기술협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 담겨있다. 일본은 결국 ‘독립축하금’ 3억달러를 한국 정부에 지급했다.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위해서는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해야 한다.


지난 28일 기시다 일본 외상은 “배상이 아니”라며 “도의적 책임이라는데 변함이 없으며 법적 책임은 (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끝났다는 점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한국 대법원은 “(일제에 의한) 피해자문제, 반인도적 범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결했는데 박근혜 정부가 이를 뒤집으며 일본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1965년 당시 피해자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정부가 한국에 3억달러를 주면 국내에서 개인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1993년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기록을 한국에 보내 60년대 당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해결방식도 비슷하다. 


합의문에 따르면 일본이 10억엔을 내면 한국이 재단을 만들어 위안부 피해자 해결을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김민철 연구원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며 “이미 1995년 아시아여성기금 창설했을 때도 피해자들이 돈을 원하는 게 아니라서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시 일본은 시민모금 6억엔, 정부 자금 48억엔을 냈지만 피해자들은 거부했다. 



공동합의문 없어 제멋대로 해석 

1965년 한일협정은 공동합의문이 없었고 한일정부가 각각 기자회견을 통해 각 국민에게 소식을 전했다. 한국정부는 당시 강제징용피해자의 미지불임금, 사망자 부상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 앞으로 이를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는 항목(청구권 8항목)을 빠뜨린 채 발표했다. 일본은 현재까지 이 항목을 근거로 개인청구권을 부정하고 있다. 


  
▲ 윤병세(왼쪽)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위무상이 28일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포커스뉴스
 

지난 28일 역시 공동합의문 없이 각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문을 전했다. 일본 외무상은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에게 상처를 입힌 문제”라고 애매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를 조양호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본 국고에서 나온 10억엔으로 피해자 지원이 이뤄지는 건 사실상 법적 책임을 수용했다”고 해석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녀상’ 철거 문제는 일본 측 발표에는 없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발표에만 등장한다. 한국 측 합의문에는 “한국정부는 일본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공관의 안녕 및 위엄의 유지라는 관점에서 우려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한다”며 “관련단체와 협의해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민철 연구원은 “이는 한국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소녀상’을 철거하겠다는 것”이라고 봤다. 이미 협상전인 지난 26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이 한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한국정부가 소녀상을 이전하도록 관련 시민단체를 설득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그러자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터무니없는 언론플레이”라고 해명했지만 실제 합의문에는 ‘소녀상’ 철거가 언급돼 있다. 한국 정부가 언론플레이를 한 셈이다. 



경제발전을 위한 한일협정, 군사협력을 위한 위안부협상 

 

1965년 한일협정과 2015년 위안부문제 협상은 모두 양국 정부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1962년 7월 주일 미대사관에 발송한 미국무성 전문을 보면 “한국정부 최고위층을 접촉해 청구권 문제를 청구권을 강조하지 않고 하나의 패키지(일괄타결)로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득하라”며 “추가적인 압력이 필요하다면 미국의 개발차관 공여가 협상타결과 관련됐다고 말하라”고 돼 있다. 


해당 문서에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한일협정이 필요하고 금액의 성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액수가 중요한 것이라는 미국의 뜻이 담겨있다. 실제 박정희 정권은 이 자금 중 7370만달러로 1973년 포항제철, 280만 달러로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이번 위안부 문제 합의도 미국의 뜻이 반영된 결과다. 김민철 연구원은 “위안부 자체의 문제보다 한일군사보호협정 등 군사동맹 강화가 급물살을 탈 것”이라며 “미국 입장에서는 한미일 삼각동맹 안으로 한국이 들어와야 하는데 위안부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었으니까 ‘불편하다’, ‘빨리 해결해라’ 이런 요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사진=포커스뉴스
 

지난 2012년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은 체결 직전까지 갔다가 여론의 반발로 유보됐다. 일본측이 제기한 군사정보보호협정과 상호군수지원협정 논의가 막히자 지난해 12월 국방부는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한미일 군사정보 공유 약정’을 추진했다. 한일 군사동맹 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이다. 

  

미국의 개입, 주도권은 누구에게

29일 중앙일보는 “박 대통령 사실상 협상 지휘, 미국 끌어들여 아베 압박”이란 기사에서 정부 관계자의 말을 통해 “평소 정책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는 스타일을 감안하면 협상을 박 대통령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보도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미국 정부 인사들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일본을 압박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민철 연구원은 “한국이 미국을 동원했는지 미국에게 압력을 받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개입돼 있다는 것”이라며 “협상 다음단계가 미국 주도하의 삼각동맹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 국제정치적 논리일 것”이라고 말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8일 특별성명을 통해 “한일 양국 위안부 문제 합의에 환영한다”는 뜻을 전했다. 


외교적 합의는 쉽게 깨기 어려운 약속이며 주변국에게도 영향을 끼치는 효과까지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은 족쇄가 됐다. 1990년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이 “(65년)한일협정보다 나은 조건으로 북한과 협상하지 말라”고 요구했고, 결국 2002년 김정일-고이즈미 북일정상은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명시했지만 위안부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한 ‘반쪽’짜리 공동선언을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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